도대체 KT 내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신임 사장 선출 문제로 내홍을 겪고 있는 KT 사장추천위원회가 이번에는 정관 변경을 놓고 안팎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 같다. 문제가 되고 있는 KT 정관 제25조는 회사와 경쟁관계에 있는 회사 및 그와 공정거래법상 동일한 기업 집단에 속하는 회사의 임·직원 또는 최근 2년 이내에 임·직원이었던 자는 회사의 이사가 될 수 없도록 한 조항이다.
갑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동안 문제가 되지 않았고 공모 조항에도 있던 것이니 새삼스럽다는 것이다. SK텔레콤 등 경쟁사와 여타 다른 기업에도 있던 조항이란 점에서 더욱 그렇다. 오히려 SKT가 지난 2000년 3월 이 조항을 먼저 만들었다. 당시 16.7%의 SKT 지분을 갖고 있던 경쟁사 KT가 사외이사를 보내 회사 경영상태를 모두 들여다볼 수 있게 되면서 이를 차단하기 위해 삽입한 것이다. 경쟁기업에 마케팅과 경영 및 영업전략 등 기업 비밀사항이 흘러들어가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다.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통신기업 간 경쟁의 산물인 셈이다.
그렇다면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 이유는 유력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인사가 이 조항에 해당된다는 점이다. 이미 정관 변경 방침이 기정사실화하고 있는 분위기다. 사추위가 정관에도 맞지 않는 신임 사장 후보를 미리 내정해 놓고 사장 추천 절차를 밟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그래서 나왔다.
참으로 딱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추위원 상당수가 참여해 만들었고, 이미 이 정관을 적용해 이용경·남중수씨를 사장으로 선임한 바 있다. 그런 정관을 이제 와서 바꾸겠다니 무슨 이유인지 도통 모르겠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사외이사가 권한만 있고 책임은 없다는 말이 나왔다. 기업의 경영을 감시하고 견제해야 할 사외이사가 책임감 없이 정치권 눈치만 보면서 권한만 휘두르고 있는 꼴이다.
주인 없는 민간기업의 한계인가. 정치권이 간섭하는 것도 눈에 거슬리지만 사추위의 이런 행태는 더욱 비판받아 마땅하다. 이미 일부 사외이사는 결격 사유를 안고서도 재선임돼 활동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외적인 여론도 비판 일색이다. 그런데도 정관 변경 얘기가 멈추지 않고 있다. 외부 명망가를 CEO로 영입해야 하며, 외국의 경우를 보더라도 그런 시대 흐름을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맞는 말일 수 있다. 파벌과 지연과 학연으로 얼룩진 KT의 고질적인 병폐를 청산하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논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관 변경은 있을 수 없다. 한 나라의 국민이 법을 준수해야 하는 것처럼 일반기업의 정관은 존중돼야 한다. 문제가 있다면 사장 선임 작업 중에 바꿀 게 아니라 사장을 선임하고 난 후 합리적인 절차를 거쳐 개정해야 맞다. 그래야 또 다른 ‘의도’와 ‘시도’를 막을 수 있다. 눈을 돌리면 현재의 주자군에도 KT 사장감은 얼마든지 있다. 굳이 정치권과 연계가 없더라도 통신 분야의 전문성과 경영능력을 갖춘 CEO감이 없지 않다는 말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했던가. 이미 경기가 시작됐는데 경기 중에 경기 규칙과 규정을 바꾸자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법률적으로도 맞지 않다. 아무리 작은 선거라도 선거관리위원회에 후보자 등록을 마친 상태에서 입후보 자격을 바꾸는 법은 없다. 한번 원칙을 깨면 자율 경영은 영원히 없다.
박승정 정보미디어부장 sjpark@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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