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이 주먹이 뉘 주먹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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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날 시골집에는 늘상 담벼락 가까이에 감나무 몇 그루가 심어져 있었다. 가을날 툇마루에서 탐스런 감이 주렁주렁 열린 모습을 보기만 해도 마음이 풍성해지곤 했다. 감나무는 제법 높이 자라고 가지도 많다. 길게 뻗은 가지들 중 일부는 항상 담을 넘어 이웃집 마당으로 뻗어나가게 마련이다.

 어린 시절 감나무는 좋은 놀이터였다. 감나무 맨 아래 가지는 보통 아이들의 키보다 높다. 그래서 감나무 밑동을 타고 오르는 재주는 자랑거리였다. 지금으로 치면 암벽등반인 셈이다. 이웃집 친구들을 부르기에 감나무 위보다 더 좋은 곳도 없었다. 때론 담을 넘기에도 유용했다. 선조들이 담벼락 가까이에 감나무를 심었던 것은 이웃 간에 담을 극복하기 위한 지혜였는지도 모른다.

 훗날 권율의 사위가 된 오성의 어린 시절, 감나무에 얽힌 일화는 유명하다. 오성이네 감나무 가지가 담너머 이웃집으로 휘어 들어가자 이 집 주인이었던 권율이 가지에 열린 감을 다 따가버렸다. 자기네 마당에 들어왔으니 자기 것이라는 것이었다. 오성은 권율이 있는 방문에 주먹을 찔러넣고 “이 주먹이 뉘 주먹이오?” 하고 물었다. 권율이 깜짝 놀라 “네 주먹이지 누구 주먹이겠느냐”고 하자 감을 가로챈 일을 추궁했다고 한다.

 오성이 ‘주먹’을 내세운 기지로 자기 것임을 인정받았다면 그 반대도 있다. 솔로몬 왕의 이야기에 나오는 어머니의 ‘사랑’이다. 서로 자기가 진짜 아기 엄마라고 다투는 사건을 심판하게 된 솔로몬 왕은 두 부인에게 아이를 둘로 갈라 나눠 가지라고 명했다. 진짜 어머니는 아이가 죽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차라리 아이를 저쪽 부인에게 주라고 울며 말했다. 아기는 당연히 진짜 어머니에게 돌아갔다.

 한동안 잠잠했던 정부부처 간 ‘주먹’싸움이 다시 불붙고 있다. 지금은 표현조차 하기를 꺼리는 정보통신기술(IT) 관장권 때문이다. IT를 축으로 하는 컨버전스 바람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자리 잡았다. IT는 감나무보다 더 길고 깊게 이웃집으로 파고들고 있다. 과거 DJ정부가 오성을 자처하며 구획정리를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그래서인지 MB정부는 아예 밑동을 잘라 없애버렸다. 정보통신부를 해체하고 대신 가지들을 여기저기에 나눠주었다.

 그런데 밑동은 쉽게 잘라냈지만 가지치기는 더 어려워지고 있는 형국이다. 정부조직법만 바뀐 채 IT 관련 여러 법안은 아직 정비가 안 되고 있다. 호가호위(狐假虎威)마저 난무하고 있다.

 개인정보보호와 관련된 법들은 여기저기 어지럽게 흩어진 채 방치돼 있다. 이를 통합하려는 기본법안은 수년째 표류하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방송통신발전에 관한 기본법안에 방송통신콘텐츠 진흥의 주무부처임을 천명했다. 문화콘텐츠산업의 주무부서임을 자부하는 문화체육관광부는 콘텐츠산업 진흥법 제정으로 맞서고 있다. 방송통신콘텐츠 지원과 육성을 위해 융합콘텐츠사업까지 준비해놓고 있다. 이 와중에 디지털 방송콘텐츠 진흥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놓고 서로 자기가 주무부처가 돼야 한다고 주먹을 높이 들고 있다.

 이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40여개의 개정 또는 제정법안이 국회에서 계류 중이거나 상정 폐지될 상황에 처해 있다. 하나같이 누구의 ‘주먹’인지를 가려내야 하는 것들이다. 주무부처가 정해진다 하더라도 관련부처의 협조 없이는 국회통과가 어렵다.

 당돌한 오성보다 자식마저 포기하는 연약한 어머니가 그립다. 주먹질로라도 가지에 열린 열매까지 차지하려는 오성이기보다 IT를 살리기 위해 양보하고 희생하는 어머니가 될 수 없을까.

 유성호 부국장·생활산업부장 shyu@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