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3년 이라크 전쟁 시 미군의 공습 작전명은 ‘충격과 공포’였다. 미국의 압도적 첨단 화력을 일시에 쏟아 부어 적의 지휘부를 마비시키고 궤멸하겠다는 전략이다. ‘충격과 공포’로 전쟁 초기부터 이라크의 저항의지 자체를 원천 봉쇄하는 효과를 노린 것이다. ‘충격과 공포’가 이번에는 한국 경제를 공습하고 있다. 미국발 금융위기 쓰나미의 여파다. 여기에 외국인과 한국정부 합작의 ‘충격과 공포’ 확대 재생산으로 우리 경제는 점점 깊은 늪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한국이 그간 국제사회에서 얼마나 따돌림을 당했는지 혹은 얕잡혀 보였는지는 해외언론이 보여준다. 미국, 유럽, 아시아 언론들까지 국가 부도 예상기사에서 ‘한국 때리기’가 한창이다. 이유가 무엇일까. 한국경제가 충격과 공포에서 허우적거릴수록 이득을 얻는 세력의 부추김은 당연하다. 우리 잘못은 없을까. 뒷북과 엇박자 정책만을 되풀이하는 무능한 정부가 있다. 아직도 탐욕을 버리지 못하는 일부 경제주체들의 어이없는 행태가 가세한다. 상식으로는 이해 못 할 어처구니 없는 일들을 버젓이 저지르는 ‘참 이상한 나라’의 예가 꼬리를 물고 있다.
유동성 위기에 처한 정부의 첫 대책은 8조원이 넘는 ‘건설업 지원’이었다. 은행권의 금융 경색을 해소하기 위해 부동산 자산의 거품이 꺼지는 것을 막으려 한 고육지책이다. 하지만 총체적 경제위기 속에서 건설업체의 미분양 아파트와 토지 사주는 일이 가장 시급한 것인가. 미국은 금융권에 돈 퍼붓지만 지분을 사들여 국유화하는 과정을 밟고 있다. 우리는 조건 없는 지원이다. 이어지는 정책은 기가 찰 노릇이다. 아예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세를 철폐하겠다고 나선다. 이쯤 되면 경제위기를 부동산 투기로 해결하겠다는 것과 다름아니다. 서민들 죽어나가는 판에 부동산 투기 조장하면 뒷감당이 두렵다. 그렇다고 대책이 약효가 있을 것이라고 분석하는 전문가도 거의 없다. 부동산에 목매는 ‘이상한 정부’다.
금융권 정책은 더욱 ‘이상하다’. 100조원 규모의 금융권 외채를 정부가 지급보증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다. 그럼에도 앞뒤가 바뀌었다. 건설과 마찬가지로 책임을 묻지 않는다. 1년치 나라 예산과 버금가는 돈을 태우면서 별다른 조건이 없다. 맹목적 월가 추종자들의 놀이터가 된 금융권이다. 덕분에 외국에서 빚 끌어다 ‘탐욕’에 투자했고 된서리를 맞았다. 국가 부도가 난다면 바로 이 금융권의 외채가 결정적 요인이 된다. IMF도 돈 빌려주면서 까다롭기 그지없는 이행단서를 달았는데 우리 정부는 자구노력은커녕 책임 묻는 조건도 없는 특혜 정책을 들고 나왔다. 당연히 야당이 반발했고 여당 내에서도 국민 세금의 ‘묻지마 지원’ 어림없다며 제동을 걸었다. 정부는 마지못해 단서조항을 넣은 지급보증안을 내놓았다. 이런데도 은행들은 ‘관치금융’ 운운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도 ‘이상함’의 범주에 들었다. 그는 “지금의 위기는 신뢰의 상실에서 비롯됐고 정부는 선제적이고 종합적인 대책을 차질없이 집행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작 국민과 시장, 심지어 외국에서까지 신뢰를 상실한 현 경제팀 경질에는 한사코 손사래를 친다. 신뢰 회복의 첫걸음이 무엇인지 도무지 헷갈린다. 이 와중에 코미디도 끼어들었다. 밝고 당당한 젊은이들이 정부가 못 하는 ‘독도 지키기’를 대신하는 반크에 주는 쥐꼬리만 한 지원금마저 삭제했다. 바로 그 순간 반크 지원액의 거의 두 배에 이르는 국가 예산은 연예인 올림픽 응원단이 호화판으로 먹고 자는 비용으로 사라졌다. 88만원 세대가 전 세대로 확산되며 고통의 한복판으로 들어가고 있는 ‘참 이상한 나라’의 자화상이다.
이 택 논설실장 etyt@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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