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동기동창이 있다. 친구 아버지는 전직 교장선생님이시다. 그는 ‘선생님’의 둘째 아들이다.
이 친구는 아무나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교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만,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요즘 흔한 게 ‘선생님’이다. 의사, 학원강사, 기자, 직업 정치가도 선생님으로 불린다. 친구는 그들을 선생님이라 부르지 않는다. 학창 시절 큰 수술을 앞두고 “‘의사 선생님’이라고 한 번만 부르면 아프지 않게 수술해줄 것”이라는 의사의 농담에도 그는 ‘의사님’이라고 불렀지,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마취 기운이 퍼지는 가운데도 그는 ‘의사님’이라고 했다.
독립운동가 백범 김구, 서재필, 안창호도 ‘선생님’으로 불린다. 학생을 가르치는 것과는 다른 의미다. ‘선생님’은 ‘선생(先生)’을 높여 부르거나, 남자 어른을 높여 부르는 말이지만, 이들을 이렇게 부르는 것은 국가를 이끌고 국민에게 비전을 주는 이에 대한 예우가 담긴 듯하다. 인생의 선배로서 높은 학식과 낙관적인 미래 비전을 제시한 인물에게 백성들은 ‘선생님’이라는 존칭으로 예를 갖췄다. 이명박 대통령이 존경하는 인물도 ‘무실역행(務實力行)’을 강조한 도산 안창호 선생이다.
‘선생님론’이 청와대에 등장했다. 지난 13일 라디오 ‘노변정담’ 이후 이 대통령의 통치스타일을 ‘교감(校監)선생님 스타일’이라고 평가하면서부터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교장선생님은 쉽게 얘기하면 정치적 지도자로 큰 틀의 화두만 던지지만, 교감선생님은 3학년 2반 빗자루를 언제 샀는지까지도 대충 알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학년주임, 서무주임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박정희 전 대통령도 나라 구석구석을 꿰고 있는 지도자였고, 세종대왕도 흉년이 들었을 때 굶어서 죽은 아사자가 나오게 하는 수령은 태형(笞刑)을 칠 정도로 치밀하고 철저한 분이었다. 모두 교감선생님 스타일이다. 오늘 이 대통령의 연설을 교감선생님 같다고 평하는 것은 대단히 큰 칭찬”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청와대부터 동사무소 하나하나까지 파악하고 싶어하는 실무형 대통령을 지향한다. 청와대는 이 대통령을 1학년부터 3학년까지 전체 학급의 운영상황을 파악하고, 이를 통해 각 학년 및 서무, 담임을 파악하는 관리형 ‘교감(校監) 스타일’로 규정했다. 꼼꼼하고 국정을 세밀하게 살피겠다는 대통령의 의지가 담겼다. 관리하고, 감시하는 리더십이다. ‘교감(校監)’ 스타일의 리더십은 학교를 살피는 데는 좋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가르치는 일을 감시하고 바로잡는 ‘교감(敎監)’이 없다. 학교를 감시·감독하는 것보다 먼저 해야 할 일, ‘선생님’으로서의 후학을 바르게 가르치는 일이다.
이 대통령이 존경받는 지도자 ‘선생님’ 반열에 오르려면 직업인으로서의 학교를 관리하고 감시·감독하는 ‘교감(校監)’으로는 부족하다. 학생을 사랑하고 교육 비전을 제시하는 ‘교감(敎監)’도 병행해야 한다. 이 대통령에게 그것은 높은 대중지지도일 수 있고, 국민과 소통하고, 신뢰를 쌓으며 경제를 살리는 일이기도 하다.
정치가들은 흔히 정다산의 ‘목민심서’를 좋아하는 도서목록에 넣는다. 목민심서에서 고을 수령으로서, 정치가로서 행해야 할 통치 유형이 세밀하게 들어 있기 때문이다. 허나 목민심서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은 애민육조(愛民六條)다. 다산은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먼저고, 그 다음이 통치라고 강조한다. 교감보다는 선생님이, 감시보다는 신뢰와 애정이 먼저다.
김상룡 경제교육부 차장 srk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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