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신문은 인터넷 공간의 정확한 이해를 위해 실제로 인터넷에서 살고 있는 네티즌의 깊은 목소리를 듣고자 했다. 이를 위해 한국·미국·프랑스·영국·일본 5개국의 네티즌 5∼6명씩을 현지에서 만나 그룹 인터뷰를 진행했다. 네티즌은 개인적 측면에서 인터넷이 갖는 의미는 물론이고 정치·경제·사회 분야에서도 다양한 의견을 털어놨다. 각국 문화에 따라 상이한 점도 발견됐지만 네티즌의 속성은 비슷했다. 인터넷 공간을 따뜻하게 바라보고 있으며 공유 등 인터넷의 유용성을 활용해 좀 더 본인의 삶이 재미있고 풍족해지기를 기대했다. 무엇보다 자유분방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상당한 책임성을 느끼고 있었다. 이들의 의견이 인터넷 이용자 전체를 대표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터넷의 이해를 보다 풍부하게 만드는 데는 더할 나위없이 좋은 재료라고 생각한다. 방대한 내용을 다 담을 수 없어 몇 카테고리로 묶었으며, 질문을 던지되 각 주제를 놓고 각국 네티즌이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는 가상 대담 형식으로 꾸며봤다.
#인터넷은 어떤 공간인가
―일단 인터넷이란 곳에 대해 갖고 있는 느낌부터 이야기 해 볼까요.
▲알렉산드르(프): 매우 유용한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정보를 검색할 수 있어서 편안하기도 하고요. 쇼핑하고, 기차표를 사고, 많은 일을 할 수 있잖아요. 생활의 일부입니다. 하루에 몇 시간씩 사용해서인지 인터넷 접속이 안 되면 불안하고 단절된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인터넷 의존적이라고나 할까요.
▲박재영(한):하루에 인터넷을 업무 외에도 네 시간 정도 이용합니다. 쇼핑 같은 것을 빼고 두세 시간은 자기계발에 사용하지요. 유용한 공간이라는 점에 동의합니다. e메일만 해도 의사소통에 필요한 경제·사회적 비용을 크게 줄여 줌으로써 사회가 경제적인 면에서 변화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지요.
―다른 분들도 표정을 보니 ‘정보’를 찾거나 다른 여러 사회적인 행위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터넷과 온라인 공간의 유용성은 모두 인정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인터넷상의 본인의 행동에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글쓰기 등에서 오프라인과 다른 행동이 있나요.
▲최준호(한): 다른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고 언제나 제 생각을 다 표현하게 되지는 않습니다. 다음 아고라에 글쓰는 사람이 많으니 생각대로 자유롭게 쓸 듯하지만 블로그 같은 개인공간은 좀 더 조심스럽게 글을 적게 됩니다. 출처 확인도 한번 더 하게 되지요.
▲로라(영): 인터넷에서 인종에 관한 이슈가 발생하면 이야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영국은 인종차별을 굉장히 심각하게 생각합니다. 누가 나를 보는 것 같아서 그런 글은 잘 쓰지 않아요. 자기 규율이란 면까지 생각하면 인터넷이 마냥 그렇게 ‘열려’ 있다고만은 할 수 없습니다.
▲시미즈(일): 상대방에게 부끄러워하는 것은 인터넷 세계도 마찬가지지요. 더욱 발언할 수 없는 일들이 있기도 합니다.
▲히로타(일): 그런 것을 이해하는 문제는 현실 세계도 온라인과 마찬가지입니다. 오프라인에서도 자기를 감추거나 거짓말하는 일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얼굴만 보이지 않을 뿐 맞다고 생각되는 것은 자기가 판단하고 나머지를 무시해야 한다는 본질은 인터넷과 현실이 같은 것 아닌가요.
―자신의 행동을 조절하는 게 자연스럽다는 말처럼 들리는데요. 그럼 이런 인터넷 공간에서의 활동이나 혹은 인터넷 자체가 가진 사회적 영향력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안수지(한): 선거 등에서 여러 변화를 일으킨 것은 사실이라고 봅니다만 현재 한국 인터넷 문화는 게시판 문화라는 한계가 있습니다. 게시판 등에 의견이 마구마구 모이기는 하는데 그것이 정작 정부나 사회에 얼마나 수렴되는지에는 상대적으로 큰 관심이 없다고나 할까요. 외국은 실제 커뮤니케이션에 인터넷을 우리보다 좀 더 많이 사용한다는 생각이 드는데 일본은 어떻습니까.
▲나오이(일): 한국에서 인터넷이 권위주의를 없애는 데 상당한 공헌을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아직 일본은 인터넷의 정보는 쉽게 믿지 않는 풍조가 있습니다. 부정적인 측면을 먼저 생각하는 거지요. 그래서 젊은 리더들은 일본이 인터넷에더 긍정적인 시각을 가져야 한다고 주문하기도 합니다.
▲샘(미국): 인터넷에서 일어나는 많은 토론·논의 등이 미국 내에서 숨겨진 정보를 점점 줄이는 역할을 합니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하지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많이 사용하게 되고 온라인 접속 시간이 늘어나면서 악성댓글 같은 사회 문제도 일어나고 있지요. 아직까지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이런 일을 억제할 수 있는 기술적 조치가 마련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인터넷상에서의 책임은 누가 지나
―인터넷의 정보가 계속 많아지면서 이를 주로 배포하는 인터넷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놓고 논의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것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미셸(미): 정보가 한 사이트에 올라가 있다면 그 내용은 사업자가 어느 정도 책임을 지는 게 맞다고 봅니다.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려는 노력의 문제지요. 물론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기본적인 책임은 가져야 하는 게 아닐까요. 정보로 비즈니스를 하려고 한다면 거기에 들어가는 사회적 노력과 성과의 트레이드 오프 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안수지: 사회적 책임은 모든 기업이 가져야 합니다. 다른 기업이 하는 만큼 포털도 사회적인 책임은 느껴야 하는 거지요. 다만 방식은 고민을 해야 합니다.
▲베로니카(프): 기업이 사회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너무 미국적인 사고 방식 아닌가요.
▲알렉산드르: 맞아요. MS나 빌 게이츠 같은 미국식 사고입니다.
▲히로타: 사업자는 결국 자기 브랜드를 만드는 겁니다. 그 안에 어떤 정보가 있는지에 따라 사용자가 그 사업자를 인식하는 게 달라지는 것인데 꼭 사회적 책임이라고 해야 할까요.
▲로라: 인터넷은 프리 스페이스입니다. 정보나 콘텐츠를 만든 사람이 있고 배포한 사람이 있고 사용한 사람이 있는데 똑같이 책임져야 합니다. 어느 누가 더 많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아니지요.
# 인터넷상의 행위를 어떻게 바라봐야할까
-책임에 대한 얘기를 했는데 자유에 대해서도 얘기해볼까요. 온라인에서 개인 자유는 얼마나 보장돼야 할까요. 규제가 필요하다면 얼마나 어떻게 해야할까요.
▲베로니카:우리에겐 법이 있잖아요. 그 틀 안에서 자유를 누리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인 생활에서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아무거나 다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시릴:인터넷에서 제약을 이야기하는 건 인터넷의 취지에 반하는 것 아닌가요. 기술적인 규제 역시 힘들다고 봐요.
▲로라:개인이 책임을 질 수 있는 만큼 자유를 누리는 것이 맞지 않을까요. 영국의 경우 인터넷 상에서도 불법·위법 행위자에 대한 처벌이 강력합니다. 온라인 기업에 책임을 묻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그건 쉬운 방법이긴 하지만 범죄를 줄어들게 하지는 못한다는 것이죠. 스스로 자유와 책임을 잘 제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최근 개인의 표현 활동이나 저작권 보호 측면에서 인터넷을 규제하려는 각국의 정부 움직임이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시릴:프랑스에서는 우리한테는 테러리즘이나 아동 성학대, 인종차별주의 등 명백하게 내용을 규제하는 부분이 있어요. 이런 걸 제외하고 다른 영역에서 정부가 검열을 해서는 안 되죠. 그리고 인터넷이라는 열린 공간에서는 국가를 넘어서 세계와 소통하는데 과연 정부가 그것을 막을 수 있을까요. 난센스죠.
▲샘:내용에 대해 정부가 뭐라고 하는 건 언론 자유를 침해하는 거죠. 굉장히 위험한 발상입니다.
▲박재영:하지만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사이트의 문제도 반드시 있습니다. 큰 틀에서 정부의 가이드라인은 필요하다고 봅니다.
▲안수지: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것은 저도 동감합니다만 규제의 방향은 지금하고는 좀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프라인과는 뭔가 다른 속성이 있는 인터넷에 대한 정확한 시각 같은 게 필요할 것 같습니다.
▲최준호:규제가 자꾸 생기면 살아가면서 편리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불편해지는 것 같아요. 개인 게시판에 올리는 것까지 규제하는 건 좀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 식으로 기준 정해서 단속한다 해도 어차피 성공하기도 힘들다고 봅니다
대담=한정훈(일본)·김민수(영국)·최순욱(미국)·이수운(프랑스)기자
정리=최순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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