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이와 함께 바늘구멍 사진기를 만든 적이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쓸모없어 보이는 사진기였지만 사진기로 베란다 너머 산을 향해 거리를 조정하는 순간 기름종이를 거쳐 거꾸로 맺힌 상은 나 자신을 동심으로 돌아가게 해서 아이보다 더 즐겁게 상자에 눈을 대고 초점을 맞췄던 기억이 난다. 아이에게 사진기 원리를 설명해 주고 기념을 위해 디지털 카메라로 바늘구멍 사진기를 촬영하면서 최첨단 카메라로 카메라의 원조를 찍는다는 것이 아이러니했다.
카메라는 과거 기념일에만 필요한 존재에서 이제 생활의 일부분이 됐다. 70년대 창경원(당시는 창경궁을 창경원이라고 했다)에 꽃놀이를 가기 위해 옆집에서 카메라를 빌렸던 시절, 카메라는 텔레비전과 마찬가지로 동네에서 몇 대 볼 수 없는 귀중품이었다. 이 귀중품이 가정에 한 대가 아니라 개인당 한 대씩, 심지어는 개인당 여러 대씩 보유하는 시대가 왔다. 세 식구인 나도 휴대폰에, 디지털 카메라에, DSLR를 합쳐 집에 다섯 대가 있으니 가족 구성원보다 카메라 식구가 더 많은 셈이다.
디지털 카메라는 불과 5년 전과 비교해 엄청나게 진화했다. 그저 디지털 방식이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던 시절에서 지금은 손바닥 안에 들어가는 크기는 기본이고, 광학 5배줌이 되면서도 2㎝도 되지 않는 두께, 1초도 되지 않는 가동 시간, MP3 오디오 기능과 동영상 재생 기능 등 디지털 카메라는 카메라 역사상 가장 화려하게 발전했다. HD 동영상 촬영과 입체 촬영, DSLR 못지않은 화질 개선 등 주요 기업은 신개념 카메라를 개발하기 위해 지금도 밤을 새우며 연구를 거듭하고, 한편에서는 DSLR 클럽, 디시인사이드 같은 커뮤니티도 목소리를 한껏 내고 있다.
과거 ‘디지털 카메라 1.0 시대’에서는 제조사의 일방적인 제품 개발이었다면, ‘2.0 시대’에는 소비자와 제조사가 함께 의견을 공유하고 개선하는 등 기존에는 상상할 수 없는 발전을 보이고 있다. ‘3.0 시대’는 어떨까. 인공지능과 로봇 기술을 적용해 카메라가 주인과 대화는 물론이고 주인의 기분까지도 알아채고 촬영해 주지는 않을까.
이효진 오길비PR 부국장 rick.lee@ogilv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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