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이테크 산업의 젖줄이자 세계 벤처 생태계의 이상향인 실리콘밸리가 요즘 ‘사막화’와 ‘빙하기’라는 극한의 단어들로 표현되고 있다. 전 세계를 호령하던 자국 금융산업의 위기와 지속되는 경기침체로 기업공개(IPO)·인수합병(M&A)을 통한 투자 회수가 힘들어지면서 투자-회수-재투자로 이어지는 ‘벤처투자의 선순환 구조’에 피가 흐르지 않는 미국 벤처산업의 현주소를 요약한 말이다.
최근 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3분기는 미국 벤처 창업 기업의 IPO는 단 한 건에 불과해 ‘IPO 제로(0)’를 기록한 2분기에 이어 사상 최악의 투자 회수 환경이 지속됐다. 그나마 새로운 벤처 투자도 태양광 등 클린테크 업종에 집중되고 있다.
요즘 미 벤처캐피털(VC)들은 언젠가 다시 올 ‘해뜰 날’을 기다리며 시간과 싸움에 들어갔다. 올해 피투자 기업의 IPO를 예정했던 VC들은 서둘러 목표 시기를 2010년으로 수정한 뒤 새로운 벤처 투자 대신 피투자 기업의 생존을 위한 수혈 차원의 자금펀딩과 관리에 들어갔다.
전망은 비관과 희망을 오가고 있다. 향후 몇 년간 극소수 기업만이 IPO 무대에 서게 될 것이며 그 수확의 기쁨도 과거에 못 미칠 것이라는 어두운 관측 속에 오히려 위기를 기회삼아 더욱 역동적인 시장이 재현될 수 있다는 예측이 맞서고 있다.
최근 우리 정부가 국내 금융산업 선진화를 위해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쏟아져 나온 미 금융 분야 우수인력 영입을 추진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시선을 월가에서 실리콘밸리로까지 넓혀보자. 실리콘밸리 유망 벤처들의 기술·인력, 시장성은 여전히 유효한 투자가치다. 이미 곤경에 빠진 유수 투자은행(IB)들이 보유한 유망 벤처 지분이 매물로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간 우리 벤처와 투자자들은 ‘우물 안 개구리’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실리콘밸리의 벤처기술과 인력 흡수로 미 벤처 시장의 해뜰 날에 대비하는 것은 어떨까. 가능하다면 말이다.
이정환기자<국제부> victo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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