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택칼럼] 삼성전자와 ’찬밥 IT’

 새 정부 들어 액자에 갇힌 채 추억을 반추하는 서글픈 단어로 전락한 것이 ‘IT코리아’다. 한때 국민의 가슴에 자긍심을 안겨주었던 이 표현은 이제 ‘계륵’이나 ‘천덕꾸러기’ 정도의 취급을 받고 있다. 새 정부의 ‘혜안(?)’을 증명하듯 최근에는 IT코리아의 어두운 구석이 낱낱이 파헤쳐지고 있다. 고용 차원에서 IT는 이미 ‘영양가 없음’ 판정을 받았다.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과의 대화에서 “IT 발전은 고용창출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분명히 밝혔다. 대통령의 판단이니 일선 정책 당국자들에게는 ‘금과옥조’로 다가설 것이다. 역시 일자리에는 건설과 토목이 으뜸이다.

 국제 경제분석 기관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이 세계 66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2008년 IT 산업 경쟁지수’ 순위가 전해졌다. 한국은 지난해 3위에서 무려 다섯 계단이나 떨어진 8위로 밀려났다. 지난 10여년 동안 IT와 관련된 어떤 조사에서도 글로벌 톱5 아래로 내려가본 적이 없는 한국이다. 세부항목은 더욱 음미할 만하다. 연구개발이나 인적자원 부문은 체면치레라도 했지만 법적 환경과 정부지원 부문은 20위권에도 들지 못했다. 새 정부의 기조와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결과다. 현재진행형도 있다. 조영주 KTF 사장의 ‘수뢰사건’이다. 투명성을 속성으로 하는 IT 분야가 오히려 후진적이고 아날로그적인 퇴행성 부패의 온상으로 떠올랐다. 검찰 수사가 계속되고 있고 정치권 로비가 핵심이다.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몰라 IT업계와 정치권이 전전긍긍이다.

 가뜩이나 불황과 정부의 외면으로 어디 하나 성한 곳 없는 한국IT업계다. 이제는 아예 ‘몰락의 공포’에 신음하고 있다. 자연히 삼성전자에 눈길이 간다. 어려운 때일수록 의지할 곳을 찾는다. 삼성전자는 한국 대표기업이요, IT산업의 상징이다. 삼성이 위기를 타개하는 모습은 여타 기업에도 길잡이가 된다. 마침 삼성전자에서는 새로운 경영전략을 실행하고 있다. ‘기술선도형’에서 ‘실속 챙기기’로 변화했다. 경영환경을 고려한 선택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안과 우려가 교차한다. 생존과 수익성이라는 과제를 해결해야 하지만 삼성이 기술 이니셔티브를 포기하는 것으로 비쳐서는 곤란하다.

 반도체는 ‘황의 법칙’에 연연하지 않는다. 현실적 애로와 시장의 새판짜기를 겨냥한 치킨게임이 전략적 고려대상이다. 그러나 황의 법칙은 단순히 어느 개인의 이론적 사유물이 아니다. 그것은 세계 최강 삼성 반도체의 위상이다. 세계인에게는 경쟁자 누구도 감히 넘볼 수 없는 선도 기술력을 확보하겠다는 삼성의 의지와 능력으로 각인됐다. 삼성의 브랜드파워인 셈이다. 끝없이 추락하는 반도체 가격 문제가 급선무긴 해도 ‘기술의 삼성’ 이미지와 전략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가치다. 휴대폰도 비슷하다. ‘세계 최고’ ‘세계 최초’라는 수식어가 사라졌다. 출시모델의 수도 줄었다. 전략제품보다는 트렌디 상품을 통한 마케팅으로 승부한다는 해석이 압도적이다. 시장 점유율은 높아지지만 자칫 명품 반열까지 올랐던 품질이 의심받는 수준은 막아야 한다. 컴퓨터와 MP3P를 정보통신으로 끌어와 재도약을 추진 중이니 기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별로 없다. 애플이 세상을 들썩이더니 이번에는 구글까지 가세했다. 노키아는 여전히 플랫폼에서부터 콘텐츠를 아우르는 최강이다. 글로벌 빅 히트가 가능한, ‘삼성만이 할 수 있는, 삼성스러운 휴대폰’의 재등장은 언제쯤일까.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오늘의 삼성전자 같은 기업 만들려면 30년이 걸린다”며 애착을 보였던 이건희 전 회장의 말은 되새겨볼 만하다. 삼성전자의 최대 자산은 세계 IT 시장을 리드하는 최고 기술기업이라는 브랜드다. 1980년대에는 일본 7위권의 샤프나 산요를 벤치마킹하던 삼성이, 소니까지 제치고 최고로 올라서는 데 30년이 소요됐다. 앞으로도 IT는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그래도 성장동력이고 수출의 40% 이상, 무역흑자의 거의 전부를 책임지는 것은 IT일 것이다. 그래서 IT의 인적·물적 자원을 독차지하고 있는 삼성전자의 몫이 더욱 커 보인다.

  이 택 논설실장 ety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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