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힉스` 실험

  국내 과학기술계, 특히 기초과학의 핵심으로 자부하는 물리학계가 유럽의 강소국 스위스를 엄청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현재 스위스에서 ‘신의 입자’로 불리는 ‘힉스’의 존재 여부를 확인할 초대형 실험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힉스’는 물체의 질량을 결정하는 것으로 알려진 이론상의 입자로 영국 에든버러 대학의 페터 힉스 교수가 처음 주창한 개념이다.

우주 생성의 비밀을 밝혀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이 입자 확인 실험이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 주도로 프랑스와 스위스 국경지대 지하에 설치된 둘레 27㎞의 세계 최대 입자가속기(LHC)에서 진행되고 있다. LHC 건설에만 지난 14년간 95억달러(약 10조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이 실험은 283조5000억개의 양성자를 상호 반대편에서 빛의 99.9999991%로 가속한 뒤 충돌시켜 쿼크 등 소립자의 무게를 결정하는 이론상의 물질 ‘힉스’를 찾자는 것이다.

또 일부 과학자는 양성자가 충돌할 때 우주 탄생의 순간인 빅뱅 환경을 만들어 블랙홀이 출현할 것이라는 지적도 내놓고 있다. 블랙홀은 무한대의 중력으로 인해 빛과 에너지, 물질, 입자 등을 모두 흡수하는 특수한 공간을 말한다. 순간적이긴 하지만 블랙홀이 만들어지면 자칫 지구 자체가 빨려들어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실패할 수도 있지만 이 실험으로 일부에서는 노벨상이 쏟아질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으며 기대감을 표출하고 있다.

‘돈 없고 힘이 없어’ 아직 이공계 노벨상 수상자 한 명 배출하지 못한 국내 과학기술계의 현실에서 보면 부럽기만 한 일이다. 우리나라는 고작해야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응용연구개발팀이 사이버 공간에서 ‘가속기 실험 원격제어센터’를 구축해 놓고 미국 페르미연구소와 우주 생성의 기원을 밝히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정도다.

우리나라도 기초과학 중흥을 위해선 가속기를 도입해야 하고, 그 가속기를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가 구축될 충청권에 설치할 것이라는 소리가 한때 나왔지만 지금은 ‘구두선’이 된 듯하다.

민동필 현 기초기술연구회 이사장이 지난해 대통령 선거 때 기초·원천기술 투자를 부르짖으며 우리나라 순수 기초과학의 열악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방안으로 수조원이 들어가는 ‘가속기’ 구축 방안을 내놓았지만 현재는 종적이 ‘묘연’하다.

돈이 많이 들고 투자 대비 효용성과 응용성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등의 논리에 투자 순위에서 밀렸다는 후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예산은 한정돼 있고, 돈 쓸 일은 많다 보니 이해는 가지만 과학기술계 시각에서 보면 뭔가 찜찜하기 그지없다.

한국과학재단의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미국의 90년대 기초연구 능력 수준에 도달하는 데 168년이 걸린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충격을 준 적이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기초 부문 격차가 갈수록 더 벌어지면 벌어지지 좁혀지지는 않는단 것이다.

기초연구 분야 발전 속도도 미국이 시속 100㎞로 달리고 있다고 가정하면 일본은 40㎞, 우리나라는 일본의 3분의 1 수준인 13㎞ 정도의 속도라는 것이 한국과학재단의 연구결과다.

늦은 감은 있지만 ‘신의 영역’에 도전하고 있는 스위스처럼 우리나라가 국가경제의 밑거름인 과학기술을 탄탄히 다져가기 위해서는 원천, 기초기술 투자의 획기적인 가속이 필요하다.

박희범 전국취재팀장 hbpark@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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