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인재양성] 창의적 인재 구인 열전

Photo Image

 “창의적 인재가 2020년 세계 경제대국을 꿈꾸는 한국의 미래를 이끈다.”

 21세기는 인재 전쟁의 시대다. 세계 모든 국가와 기업이 인재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 특히 부존자원이 적은 우리나라는 국제 경쟁력을 높이고, 급변하는 사회에 대응할 수 있는 인재양성이 절실하다. 그중에서도 첨단 IT산업과 과학기술 발전을 통해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의 성장을 이끌어 온 이공계 인재의 중요성은 더욱 크다.

 이명박 대통령도 지난달 20일 국제과학올림피아드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학생 대표들을 청와대로 초청한 자리에서 “우리의 미래를 책임질 과학영재들을 발굴하고 체계적으로 지원할 것”이라며 이공계 인재양성을 강조한 바 있다.

 ◇세계는 인재전쟁 중=주요 선진국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인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국가 차원의 인재 확보 전략을 펼쳐왔다. 그중에서도 우리나라와 같이 부존자원이 부족한 싱가포르와 이스라엘 등은 정부에 인재양성 전담부서를 설치할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싱가포르는 1990년대 후반부터 ‘맨파워21’이라는 국가 비전을 세우고 인재양성과 해외 인재 유치정책을 펼쳐왔다. 초등학교부터 실시하는 이중언어 교육과 영재교육 강화, 해외 명문대 유치 등의 인재전략을 추진 중이다. 또 인적자원개발(PD) 인증제를 실시함으로써 기업과 공공기관이 인재를 길러낼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지정학적 위치가 불리하고, 국토 환경도 열악하지만 세계적인 인재강국으로 유명하다. 이는 정부의 강력한 영재교육 정책에서 비롯됐다. 초등학교 2·3학년 중 상위 3% 학생을 대상으로 한 영재학급을 운영하는 것이 특징이다.

 유럽의 인재강국인 프랑스는 특수 전문대학인 ‘그랑제콜’이 인재양성의 요람이다. 그랑제콜은 고교졸업 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 상위 10%에게만 입학자격을 주며, 자격을 가진 학생은 치열한 경쟁을 통과해야 입학할 수 있다. 그랑제콜 중에서도 행정분야의 엘리트를 키워내는 ‘국립행정학교’와 이공계 분야 엘리트를 양성하는 ‘에콜 폴리테크니크’는 프랑스의 자존심으로 불릴 정도로 유명하다. 그랑제콜은 각 분야의 기업·기관 등과 연계를 통한 현장실습을 강화해 맞춤형 인재를 키우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에콜 폴리테크니크는 교육기간 4년 중 15개월 이상의 현장실습을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

 영국도 지난해 과학기술고등교육부를 신설하고, 이공계 엘리트를 전략적으로 키우겠다는 뜻을 밝혔다.

 미국은 인재 양성뿐만 아니라 해외인재 유치를 통해서도 경쟁력을 높여가고 있다. 미국은 세계 최고의 선진국답게 전 세계 출신 인재들이 가장 선호하는 나라로 꼽힌다. 또 다국적·다문화 인재를 전략적으로 포용하는 국가 정책도 산업·기술 경쟁력을 더욱 강화시키는 비결이다.

 ◇한국형 글로벌 인재를 위해=다른 나라들에 비해 조금 늦긴 했지만, 우리나라도 인재양성을 위한 정책을 펴나가고 있다. 정부도 인재양성에 대한 의지를 지속적으로 밝혀왔다. 지난 8월 말 교육과학기술부가 발표한 영재교육 정책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이건희 전 삼성회장은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점으로 ‘획일화’와 ‘지나친 평등주의’를 꼽았다. 획일적 교육으로 판에 박힌 듯한 학생들만 양산하는 교육정책에 대한 지적이다.

 서남표 KAIST 총장도 획일화된 대학입시 정책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서 총장은 “영재들을 교육시키는 과학고마저 입시교육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각 대학에 학생 선발의 자율성을 주고, 대학에 맞는 재능과 창의력을 가진 인재를 뽑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인재유치 역시 힘써야 할 분야다.

 지난해 삼성경제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03년까지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한국인의 46%가 국내에 돌아오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우수한 인재가 활동하기에는 국내 여건이 미국 등 선진국에 비해 뒤처지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성과를 창출하는 사람에게 충분한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선진국형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인재유치를 위해 신경써야 하는 또 한가지는 한국인이라는 순수 혈통주의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다양한 국적과 문화를 가진 사람들과의 교류와 공동연구 등을 통해 지식 수준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이를 위해 외국인이라도 우수한 인재라면 적재적소에 배치할 수 있게 제도를 갖춰야 한다. 외국인이 생활하기에 적합하도록 세제·교육·주거 등 사회 인프라를 개선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융합형 인재가 미래 이끈다=복잡·다원화된 현대사회에 필요한 인재상은 다양한 방면을 두루 이해하는 융합형 창의인재다. 이공계 인력만 하더라도 과학기술뿐만 아니라 인문·사회 분야의 소양도 필요하다. 역으로 인문·사회·정치·외교 분야 인력 역시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가 수반돼야 한다. 자연과학과 인문학을 연결하려는 통섭(Consilience, 지식의 통합)이 최근 화두로 떠오른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앞서 영재교육 강국으로 예를 들었던 이스라엘은 지난 1990년 ‘예술과학고등학교’를 설립했다. 이 학교에서는 과학 영재에게 예술교육을, 예술 영재에게는 과학교육을 시킴으로써 문화·예술·철학·과학을 아우르는 균형잡힌 인재를 길러내고 있다.

 정윤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은 “에너지·질병·해양·우주 등이 전 세계적인 현안으로 대두되는데 한국이 이러한 문제에 대처하고 국제사회에서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이공계 출신들이 많은 역할을 해야 한다”며 “이제는 외교관·정치인·변호사·NGO 등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이공계 소양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