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외환은행이 하이닉스반도체 매각을 위한 본격적인 행동에 나섰다. 하이닉스반도체 주식관리협의회 주관기관인 외환은행이 매각결의 안건을 상정시킴에 따라 협의회 회원사들은 다음주 금요일(19일)까지 동의 여부를 통지해야 한다. 하이닉스의 주식 36%를 보유하고 있는 주식관리협의회의 75% 이상이 동의하게 되면 하이닉스 매각 작업은 공식적으로 시작된다.
대우조선해양 같은 커다란 매물이 인수합병(M&A) 시장에 나와 있고 매각작업을 추진 중인 산업은행이 난색을 표시한다 해도 그동안 ‘카더라’ 통신이 공식화됐다는 점에서 예전과 다르다. 매각 작업이 본격화하는 시점이 연내가 되든 내년 이후가 되든 주식관리협의회 주관기관이 직접 움직인 것은 의미가 있다. 흔히 이야기하는 ‘하이닉스 주인 찾아주기’가 공식화하는 셈이다.
시곗바늘을 10여년 전으로 되돌려보면 하이닉스(당시 현대전자)는 1999년 LG반도체를 흡수합병하면서 탄생했다. 2000년에 직원 수만 2만2000명에 매출 10조7000억원 규모의 거대기업이었으나 이듬해 영업실적이 악화돼 저승문턱까지 가는 경험을 했다. 이후 통신시스템과 통신단말기 부문을 정리하면서 인원과 매출이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고 미국 마이크론이 인수하겠다고 나섰으나 결렬됐다. 2004년에는 매그나칩이 CMOS 이미지센서(CIS)와 디스플레이구동칩(DDI) 사업을 갖고 분리해 나가면서 하이닉스는 혹독한 구조조정을 견뎌야 하는 독자생존의 길을 걸었다.
임직원들 모두가 필사적인 생각으로 무너진 성의 벽돌을 하나하나 쌓기 시작했다. 모두 성공 아니면 죽겠다는 각오였다. 자본투입이 없는 상황이었으니 어려움은 말할 나위가 없었다. ‘이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는 말이 절로 느껴지던 시절이다. 기사회생이란 이런 걸 두고 하는 것일까. 하이닉스는 지난해 3분기까지 17분기 연속 흑자를 내며 승승장구했다.
일각에선 채권은행 등으로 구성된 주식관리협의회 관리체제만 아니었어도 과감한 투자와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경영으로 더 큰 경쟁력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자본주의 사회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랬다지만 자본가들도 엔지니어링에 이해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주식관리협의회 관리체제가 있었기에 오늘날의 하이닉스가 가능했다고도 할 수 있지만 생산공장, 맨 말단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소신과 의지까지는 아니더라도 생산현장을 배려하는 안목이 기업을 더욱 경쟁력 있는 생명체로 키울 수 있다는 해석이다.
최근 반도체 시황 악화로 적자를 내고는 있지만 이럴 때일수록 현장경영을 잘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는 배려가 필요하다. 현장을 떠난 자본주의의 성취는 이뤄지기 힘들다. 자본은 현장에서 이뤄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식관리협의회 자리에서는 ‘좋은 임자가 나타나면 좋은 조건에 매각해버리면 그만’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건 결코 좋은 주인을 찾아주는 건 아닐 것이다. 되살아난 하이닉스의 노력 속엔 주식관리협의회의 역할도 있었겠지만 가장 중요하게 작용한 것은 현장에서 뼈를 깎는 고통을 견디며 일해온 임직원들의 피와 땀이다. 그리고 이들이 하이닉스의 진정한 주인이라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주문정기자 mjj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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