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공공기관 선진화 방안] 준정부기관 늘리기에 쐐기

  정부가 준정부기관에 구조조정의 칼을 들이댔다. 이번 2차 공기업선진화계획은 총 40개 기관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29개 준정부기관을 통폐합하는 것이 핵심골자라고 할 수 있다.

정책기획이나 산업진흥 업무를 담당해온 준정부기관은 정부의 업무를 위탁하는 사실상 정부기관이나 마찬가지였다. 역대 정부는 부처를 늘리는 대신 준정부기관을 늘리는 눈가리기 식의 ‘작은 정부’를 표방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통폐합은 이러한 관행에 쐐기를 박았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 후 본격적으로 부처 통폐합 및 기능조정을 실시하면서 준정부기관의 통폐합은 예상가능한 시나리오였다. 전문가들은 이번 준정부기관의 구조조정에 대해 좋은 평가를 내리고 향후 운영이 성공을 좌우할 것으로 내다봤다.

◇공공기관 난립에 쐐기=그동안 정부부처는 준정부기관을 끊임없이 만들어냈다. 지난 5년간 45개 기관이 신설되는 등 매년 평균 10개 정도의 공공기관이 신설될 정도로 준정부기관의 홍수시대였다. 이에 따라 유사한 기능을 여러 기관이 수행해와 중복지원 등 문제가 제기됐다. 이번 2차 공기업선진화 계획은 이러한 문제를 낳고 있는 준정부기관의 통폐합에 초점을 맞췄다. 정부는 기관 통폐합으로 R&D의 효율적 관리와 중복 사업 수행으로 인한 예산 낭비 및 수요자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아울러 복수기관이 업무를 수행함에 따라 과다발생했던 인건비, 경상경비 등 간접비용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기관장 해임 불가피=기관 통폐합으로 해당 기관장들은 자동적으로 해임절차를 밟게 된다.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해임되는 기관장도 생겨날 전망이다. 그동안 통폐합에 오르내렸던 기관의 기관장이 임명되지 않은 채 업무공백이 많았던 점을 감안해볼 때 신속한 임명 절차를 통해 기관의 혼선을 최소화해야 할 것으로 지적됐다. 지방이전 문제도 걸림돌이다. 2차 대상에 포함된 기관 중 지방이전 대상기관은 10곳이다. 새로 생겨나는 기관 유치를 두고 지자체 간의 치열한 신경전이 예상되고 있는 대목이다. 일단 정부는 지자체 간 기관 스와핑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규모가 큰 기관을 유치하기 위한 지자체 간의 힘겨루기가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됐다. 또 구조조정에 따른 인력감축도 난항을 빚을 것으로 예상됐다.

◇구조조정은 진행형=이로 인해 1, 2차에 걸쳐 발표된 선진화 대상기관은 79곳이 됐다. 민영화 28개, 통합 31개, 폐지 3개, 기능조정 19개 등이다. 아직 319개 검토기관 중 4분의 1에 불과하다. 3차 발표 대상은 20여개로 부처 간 협의가 잘 이뤄지지 않고 있는 민영화 대상 기관이 될 예정이다. 나머지 200여기관은 통폐합을 포함한 경영효율화 작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배국환 재정부 차관은 “1, 2, 3차가 통폐합 등 하드웨어적인 방안이 필요한 기관이 중심을 이룬다면 4차 이후부터는 경영효율화가 필요한 기관이 중심이 될 것”이라며 “공청회와 개정법안 마련 등의 과정을 거쳐 9월 정기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권상희기자 shkwon@

ㅁ업계반응- “산업지원 축소 걱정”

 R&D 및 IT진흥 기관의 통폐합에 대해 업계는 기대와 함께 우려감도 드러냈다. 일단 산업 지원 축소로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목소리가 컸다. 중소기업들이 특히 그랬다.

오명환 네오세미테크 사장은 “R&D 지원 기관은 외부에서 보기엔 다 비슷비슷해 보이는 측면이 있었다. 우리나라가 아직 여러 분야에서 전문가 층이 얇으니 통합해 관리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며 “그러나 얼마만큼 각 분야 전문가들을 잘 선별해 지원할 수 있을지가 문제”라고 말했다.

다른 업체 대표도 “국책과제로 진행되는 연구들 중에는 연구 목적이 불분명한 프로젝트들도 많았다”며 “기관 통폐합으로 꼭 필요한 분야에 집중적인 지원을 할 수 있을것”이라며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최인용 한국SW전문기업협회장은 “각 진흥원마다 추구하는 목표와 방향이 달라 자칫 한지붕 두살림이 될 수 있어 우려된다”며 “통합이 곧 사실상 축소되는 것은 아닌지 업계에서 걱정하고 있는 만큼 기존 산업을 충분히 지원할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지원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중소기업들은 걱정이 더 앞섰다. 우상모 나인디지트 사장은 “중소기업 입장에선 R&D 지원 기관을 통폐합하면 아무래도 불리하다. 기관이 커지다 보면 덩치 큰 사업이나 대기업 위주로 업무가 진행되고 중소기업은 밀려나기 쉽다”며 “특화된 분야나 미래 성장 관련 분야가 우선 순위에서 밀릴 것 같다”고 우려했다.

또 다른 업체 관계자는 “산업 R&D 기관이 수적으로 통폐합되면 자연히 산업에 대한 지원도 줄어들 수 밖에 없을 것”이라며 “자생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이 가장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국가 산업 발전에 전반적으로 부정적일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또 한 SW 기업 CEO는 “패키지 소프트웨어의 경우 일반 사업하고 융합하기 힘든 점이 많고 IT 서비스 기업들과의 상생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부분이 있다”며 “통합 진흥원이 이런 부분까지 신경써 줄 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한세희·문보경·안석현기자 h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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