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소련이 붕괴한 직후인 1992∼1993년 사이 미국의 과학기술인력 영구 이민자 수가 연 1만명 수준에서 2만명 이상으로 두 배 이상 급증한 바 있다. 이스라엘은 100만명이 넘는 옛 소련의 유대계를 받아들이면서 과학기술자 수가 1만3000여명에 달했는데 이 가운데는 비유대계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옛 소련 해체 와중에 우수한 과학능력을 가진 고급두뇌를 발빠르게 흡수해 간 것이다. 지식정보화사회에서 국가경쟁력은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창출해 내는 고급과학두뇌를 얼마나 확보하고 효율적으로 활용하는지에 달려 있다. 미국이 외국의 과학기술인력을 유치하기 위한 두뇌확보(brain-gain) 전략을 구사하며 이미 세계 우수인재의 블랙홀이 돼 있으며, 이에 맞서 유럽과 중국 등이 두뇌유출(brain-drain) 방지대책에 골몰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다. MB정부는 출범하면서 교육부과 과학기술부를 통합했다. 이는 고등교육과 연구개발기능 간 연계 통합의 시너지 효과를 통해 지식정보화사회의 핵심경쟁요소인 고급 인재를 보다 효율적으로 양성해보자는 측면에서 나름대로 타당성이 있다. 일부에서는 연구개발에 기초한 교육을 통해 고급인력양성과 연구경쟁력 강화를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과학기술계 현장의 분위기는 기대와 달리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교육분야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너무 크다 보니 교육과학기술부 내 과학기술정책이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정부출연(연) 기관장들의 일괄사표로 인한 지도부 공백이 장기화되고 기관통폐합 등 구조개편의 문제가 조기에 방향을 잡지 못하고 지연되면서 과학기술계 전체가 술렁이고 있다. 대통령 취임 후 6개월 가까이 지났지만 아직도 진행형이다. 물론 국제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는 연구중심대학이나 출연연구소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우리나라로서는 출연연구기관을 비롯한 과학기술분야의 경쟁력 제고를 위한 개혁의 노력을 중단할 수는 없다. 또 교육과학기술부는 대학과 소관 출연연 간 연계협력 강화, 지식경제부는 출연연 간 유사중복기능 조정과 중소기업과의 연계제고 같은 정책방향도 당위성과 필요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연구원들이 미래에 대한 불안을 느끼고 연구의욕과 사기저하로 이어진다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크다. 과학기술계에 대한 개혁의 방향은 그동안 축적된 인적자산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도록 연구환경을 만들어 나가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과학기술인력은 통제·관리의 대상이 아니라 미래 국가경쟁을 이끌어갈 소중한 인적자산으로 인식돼야 한다. 생산성 향상을 위한 관리나 프로세스 관리차원을 넘어 창조적 인재, 지식기반사회에 맞는 경쟁력 있는 인재로 커 나갈 수 있도록 능동적이고 도전적인 연구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정책과 제도를 바꾸고 기관을 통폐합함으로써 우선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나타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로 인해 그동안 축적된 연구경험, 네트워크 등이 내재화된 무형의 자산이 허물어진다면 이를 새롭게 축적하는 데는 몇 배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출연(연) 등 과학기술계의 구조개혁이 자칫 고급과학두뇌의 좌절과 이탈을 가져와서 지난번 외환 외기 때의 구조조정과정에 보여줬던 어리석음을 답습해서는 안 될 것이다. 얼마 전 ‘바른 과학기술실현을 위한 국민연합(과실연)’이 “이명박정부에 과학기술은 없다”는 성명서를 발표한 적이 있다. 이러한 지적이 적정한지를 떠나 현 정부에 대한 과학기술계의 우려를 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현 정부의 과학기술계에 대한 개혁정책이 하드웨어에만 집중되지 않고 지식창출의 핵심인 고급과학기술인재의 자긍심과 연구 열기를 더해갈 수 있는 방향으로 마무리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김선화/순천향대 교수 seonhwa@sch.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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