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택칼럼]이공계 출신 `제로` 내각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전적으로 동감입니다…(중략) 그럼에도 이 정부는 별로 달라질 것 같지 않아 걱정 입니다.” 가끔은 ‘보이지 않는’ 독자들이 보내오는 글에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특히 무서울 정도의 정확한 상황인식과 칼날 같은 예리함으로 무장한 그들의 의견이 ‘현실화’될 때면 전율을 느낀다. 지난 4·15 총선 당시 원내 제1, 2당의 비례대표에 과학기술계 인사가 전무한 것을 지적하는 ‘이러면서 이공계 가라 하나’라는 칼럼을 썼다. 이를 본 독자가 전해 온 메일 가운데 하나가 잊혀지지 않는다. 논리정연했지만 예단적 결론에는 동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언론을 비롯한 각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과학기술이나 이공계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인식과 대응은 결코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다. 칼럼을 쓰고 나서도 이제 갓 출범한 새 정부였기에 한가닥 기대의 끈을 놓을 수는 없었다. 비록 과기부·정통부를 통폐합했더라도 미래 먹거리 준비하고 성장동력 창출하겠다는 정부이니 권력 엘리트들의 인식 전환은 필수적이라는 믿음 탓이었다. 그래서 내심 그 독자의 견해가 틀리기를 바랐다.

 이제 고백한다. 독자의 시각이 옳았다. 족집게 점쟁이처럼 그의 예견은 ‘사실’이 됐다. 엊그제 이뤄진 개각이 증명한다. 조각 당시 유일한 과기계 인사였던 김도연 교육과학부 장관이 낙마하고 후임에 정치학 박사인 안병만 전 외대 총장이 내정됐다. 이로써 15명 대한민국의 각료들 가운데 이공계나 과학기술계 출신은 드디어 ‘제로’가 됐다. 아마도 지난 수십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일 것이다. 청와대 비서진 역시 비슷하다. 과기보좌관 자리도 없애버린 마당에 과기 이공계 출신 수석은 언감생심이다. 그나마 ’눈치(?)’가 보였는지 과기특보를 임명했다. 한마디로 눈가리고 아웅이다. 기왕 하려면 정식 직제를 만든 채 보임하는 것이 바른 길이다. 상근하는 것도 아니고 대통령의 자문역할이 주 임무인 특보 자리는 의미가 없다. 인사가 만사라지만 이번 개각으로 이명박 대통령의 의지를 좀 더 분명하게 읽을 수 있다. 경제정책 실패의 책임자인 어떤 장관은 살리고 그 아래 차관을 대리경질하는 해괴한 인사를 밀어붙였다. 이쯤 되면 거의 ‘엽기’에 해당한다. 뒤집으면 국민적 정서나 희망보다는 대통령의 의중 관철이 우선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같은 논리를 대입하면 과기, 이공계쪽은 정답이 쉽다. MB의 머리 속에 과학기술과 이공계는 ‘없다’이다. 국가 경영에 대한 ‘철학의 빈곤’은 정치권이 단골이었는데 대통령에게까지 그런 의심이 이입되는 것은 나라의 불행이다. 가뜩이나 ‘분노할 준비’가 돼 있는 국민이고 이공계·과기계 사람들이다. 혹시 이 정부는 민심 역행을 즐기는 것은 아닌지 궁금할 따름이다.

 이명박 정부의 어젠다는 국가 경쟁력 강화다. 전쟁 같은 글로벌 체제에서 우리 후손들에게 더욱 강력하고 행복한 나라를 물려주겠다는 꿈이다. 그 꿈은 무엇으로 이루어지나. 과학자, 기술자가 풀죽은 채 소외되고, 제대접 한번 못 받는 환경에서 미국 일본 따라가고 중국 물리칠 수 있는 비법이 있는지 묻고 싶다. 두바이처럼 축적된 자본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나라도 아니다. 가진 것이라고는 사람 하나뿐인데 불도저로 땅 파고 운하만 만들면 선진국이 되는 것인가. MB와 권력 실세들은 이런데도 자식, 손자들에게 “이공계 가라”고 할 수 있겠나.

 이 택 논설실장 ety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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