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라인]18번홀의 기적’

  10년 전 이야기를 하자. 우리 모두에게는 가슴속에 연인 하나를 품고 있었다. 그로 인해 기뻐했고, 하루가 즐거웠다. 가난도 잊을 만큼 그는 연인이었다.

10년 전 7월 7일. 대한민국의 연인 ‘박세리’는 US여자 오픈 서든데스로 펼쳐진 연장전 두 번째인 11번 홀에서 버디를 낚으며 우승했다. 온 국민이 울었다.

연장전 첫 번째인 18번홀에서 그의 티샷은 페어웨이를 벗어났고, 언덕 뒤 연못으로 사라졌다. IMF라는 사상 최대의 경제 위기를 맞아 구조조정 대상이 된 ‘사오정’과 일자리를 찾지 못해 ‘이태백’이 된 우리들의 일그러진 아버지와 아들, 딸들은 TV 앞에 앉아 안타까워했다. 버디가 무엇인지, 이글이 무엇인지, 홀인원이 무엇인지 모르던 그 시절이었다. 박세리의 티샷을 보고 우리는 마음속에 묻어 두었던 패배를 다시 어루만지면서, 그 패배에 익숙해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 기적이 일어났다. 어설픈 드라마 작가가 눈물샘을 자극하는 불륜드라마나, 시답잖은 다큐멘터리 작가가 자연을 보며 구구절절하게 써내려간 설명도 아니었다. 스물 한 살의 젊은 처녀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박세리가 친 골프공은 연못 아래 겨우 풀 몇 개를 의지한 채 걸려 있었다. 처음에는 그것이 기적인 줄 알았다. 그 볼을 치기 위해 신발과 양말을 벗고 박속처럼 하얀 그의 발을 드러내기 전까지는. 수많은 사람이 스물 한 살 그의 발을 보았다. 연못 속에서조차 하얗게 빛나던 그 발을 보며 IMF 시대의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 동생들은 새벽녘 소리 죽여 울었다. 그리고 기적을 믿었고, 그 기적은 이뤄졌다. 그는 10년 전 7월 7일 대한민국 모든 사람에게 ‘18번홀의 기적’을 안겨준 연인이었다.

대한민국은 참 많이 울었다. 박세리의 하얀 발은 TV에서 애국가가 나올 때마다 등장했고, 그는 ‘저들의 푸르른 솔잎을 보라’의 주인공이 됐다. 때맞춰 야구선수 박찬호도 97년 14승 8패, 98년 15승 9패로 승승장구하면서 대한민국의 아들이 됐다. IMF 시절 그들은 우리에게 영웅이었고, 유일한 기쁨이었다. 우리는 박세리와 박찬호를 보면서 ‘고난의 행군’을 이길 수 있었다. 금을 모았고, 바보처럼 일했고, 2년 만에 IMF를 졸업했다. 세계는 기적이라고 했고, 2년 뒤 월드컵으로 세계에 화답했다.

97년 12월 IMF구제금융 신청 이후, 10년 만에 우리 경제는 제3의 오일쇼크와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위기를 맞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협상을 두고 두 달 이상 촛불시위가 이어지고 있고, ‘747’이라는 뜬구름 같은 공약을 내세운 이명박정부는 내부와 외부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경제 살리기는 뒷전으로 물러났고, 거리는 촛불을 든 사람, 실직을 한 사람, 시위를 막기 위해 나선 전경들로 넘쳐났다.

정부는 ‘저성장 고물가’ 스태그플레이션 조짐이 보이자 현재를 비상시국이라고 칭했다.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에 육박하면서 6% 성장 목표가 4.7%로 곤두박질쳤다. 이명박 대통령은 ‘2년 내 고성장이 불가능하다’고 토로했다. 정부는 환율이 1050원을 넘는 등 고공행진을 계속하며 물가를 압박하자, 외환보유액을 풀어 환율방어에 나섰다. 10년 전 ‘18번홀의 기적’을 보며 자란 박인비가 6월 29일 US오픈에서 우승하더니, 7월 7일에는 재미교포 앤서니 김과 이선화가 남녀 동반 우승했다. 박찬호도 당시를 기억할 만큼 좋은 기록으로 간만에 메이저리그에서 공을 던지고 있다.

그래서일까. 10년 전 IMF가 더 잔인하게 떠오른다. 하지만 경험은 한 번으로 족하다. 가진 것 없이 스포츠 영웅에게 우리의 아픈 가슴을 달래던 시기는 지났다. 이제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은 국가 경제를 살린 영웅담이다.

김상룡기자 srkim@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