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IT산업 선순환 구조가 무너진다

 얼마 전 위치정보사업을 하는 어느 중소기업 CEO를 만났다. 지난 해까지 유망기업으로 순항해온 이 기업은 그러나 상반기 내내 프로젝트 수주를 못해 일손을 놓았다.

 이달 들어서는 직원들 월급조차 해결하기 버거웠다. 임원급은 어쩔 수 없이 월급을 반으로 쪼개줄 수밖에 없었다며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술잔을 든 그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벼랑 위에 섰다. 중소 정보기술(IT) 전문기업들의 요즘 상황이다. 이들 기업들은 IMF 때보다 훨씬 혹독한 겨울을 맞고 있다. 정부 공공기관의 물량이 바닥권으로 떨어진 데다 민간기업들까지 프로젝트 발주를 늦추고 있다.

 중계기를 전문으로 개발·공급하는 한 중소기업은 최근 들어 매출이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다. 리눅스 전문의 어느 기업과 비즈니스인텔리전스(BI) 전문의 또다른 기업은 이달부터 수요처가 없어 고민이다.

 이들 뿐만이 아니다. 그동안 차세대 먹거리 산업의 주력으로 인식돼온 IT기업들은 요즘 전업을 부쩍 고려하고 있다. 인수자가 나서기만 하면 당장이라도 넘기고 싶다는 것이다. 이도 저도 아니면 아예 폐업을 심각하게 고민하겠다는 기업도 늘었다.

 중소 IT기업들의 아우성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IT부처가 없어지면서 공무원들은 제 살길 찾느라 바쁜데다 산하기관 통폐합 얘기까지 나오면서 IT정책이 갈 길을 잃었다. 더구나 명확한 가이드도 없는 10% 비용절감 지침은 IT프로젝트에 치명적이다.

 금융권 인사 얘기도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국책은행은 물론이고 민영은행까지 잔뜩 움츠리고 있다. 계획서 상으로는 아직 변화가 없다고는 하지만 현장에서 들려오는 실제 목소리는 전혀 다르다.

 통신서비스 기업에 대한 전방위 요금인하 압박은 통신장비산업계에 쓰나미가 돼서 되돌아오고 있다. 요금 인하로 매출이 줄어들 것을 예상한 대형 통신사들이 아예 설비투자를 유보하거나 투자계획 자체를 재검토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IT산업의 선순환 구조를 고려하지 않은 포퓰리즘적 정책의 결과다.

 거시 경제도 녹녹치 않다. 경기 선행지수도 6개월째 하락하면서 경기 하강국면이 장기화될 전망이다. 지난 5월에는 휴대폰·반도체 등 IT가 무역수지 흑자를 간신히 견인했다.

 국제 유가는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벌써 배럴당 150달러에 육박하고 있다. 국제 곡물가의 상승세도 심상치 않다. 현실감이 떨어지는 고환율 정책은 물가불안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경제 비상 시국이라는 게 실감나는 현실이다. 체감 경기로만 보면 IMF 시절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조선·자동차를 포함한 IT가 견인한 수출경제를 제외하면 분명 위기상황이다. 경제성장률도 6%대에서 4.7%로 내려갈 전망이다. 스태그플레이션도 현실화되고 있다.

 왜 그럴까. 전문가들은 IMF 시절에 오히려 빛을 발했던 IT산업이 어려움에 빠진 것은 MB정부의 IT산업육성 의지의 결여와 전략의 부재를 꼽고 있다. 일반 산업과는 구조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위기 인식에 대한 온도차다. 위기에 대한 진단도 변변찮다. 제대로 된 처방전이 나올리 없다. 고작해야 치솟는 곡물가나 고유가, 촛불 타령이 전부다. IT산업에 대한 몰이해가 낳은 결과다.

 호미로 막을 일을 방치하면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법이다. MB정부는 아직도 현실 경제 감각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특히 공공·금융·통신에 의존성이 높은 차세대산업 IT는 정부 정책에 대한 의존성이 막중하다. 아쉽게도 IT산업의 선순환 구조에 대한 정책적 의지가 없으면 IT코리아의 구호는 한 여름밤의 꿈에 불과하다. 박승정부장@전자신문, sj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