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을 경영한다는 것은 ‘자전거 타기’와 같다. 자전거는 끊임없이 페달을 밟아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쓰러진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현상 유지는 제자리가 아니라 성장이 멈췄음을 뜻한다. 최근 산업계에서 새삼 화두로 떠오른 ‘지속 성장’도 이런 맥락이다. 그러나 과연 창업이 후 ‘후진’ 이나 ‘제자리걸음’ 없이 마냥 성장한 기업이 얼마나 될까. 충북 오창에 본사를 둔 명정보기술은 그런 기업이다. 90년 창업 이후 지금까지 성장이 꺾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또 그 중심에는 이명재 명정보기술 사장(53)이 있다.
#“남이 안 하는 사업을 한다”
‘명정보기술.’ 일반 소비자에게는 다소 생소한 기업이지만 컴퓨터를 좀 안다면 절로 고개를 끄덕이는 기업이다. 게다가 사고로 PC로 고생을 해 본 경험이 있다면 결코 잊지 못하는 이름이다. 명정보기술은 하드디스크 수리, 데이터복구 전문 업체다. 산업계에서는 ‘데이터복구=명정보기술’로 통할 정도로 데이터복구 분야에서 ‘대명사’로 불리는 기업이다. “아마 한국을 포함해 아시아에서 하드디스크 수리, 데이터 복구로 사업화를 시도하기는 처음이었을 것입니다. 사업에 눈 뜬 80년대 후반 당시, 미국 등 선진국에서도 제조가 아닌 수리 서비스는 정말 생소한 분야였습니다. 처음에는 호기심에서 출발했지만 남이 안 하던 사업이었고 시장에서 필요한 사업이었기에 기대보다 빠르게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명재 사장의 ‘창업 이야기’는 지금부터 얼추 25년 전인 8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하드디스크 드라이브 헤드 생산 기업이었던 AMK 한국지사에서 일하면서 컴퓨터에 눈을 떴다. 그는 당시 생산직 직원이었지만 아침 7시에 출근해 저녁 11시에 퇴근할 정도로 일에 푹 빠져 살았다. 관심을 가진 쪽은 하드디스크 제조가 아닌 수리 분야였다. “AMK에서 생산해 미국에 보내는 수출 가격이 15∼20달러였는데, 국내에서는 평균 100달러에 제품이 팔리더군요. 그래서 주변에 아는 사람 중심으로 장난삼아 고장 난 제품을 수리하기 시작했는데 수요가 밀려오면서 아예 AMK 내에 별도 사업부을 만들었습니다. 당시 주임이면서 유일하게 간부 회의에 참석할 정도로 사업성을 인정받았습니다.”
이어 그는 90년 AMK가 말레이시아로 생산 공장을 옮기자 아예 하드디스크 수리 전문 기업을 차렸다. 당시 제품 자체가 상당히 고가인데다 중요한 정보를 담아두는 저장장치란 점에서 꽤 인기를 끌었다. 그렇게 쌓인 기술과 노하우로 93년 데이터복구 사업에 뛰어들었다. 기업과 개인 또는 주요 기관의 사라진 데이터를 저렴한 비용으로 복구해주는 일은 그때부터 명정보기술의 핵심 사업 분야로 자리 잡았다. 이명재 사장은 “당시부터 지금까지 고수하는 사업 원칙이 있습니다. 바로 남이 못 하거나 안 하는 사업에 승부를 건다는 것입니다.” 시장 1위로 명정보기술을 만든 출발점은 이명재 사장의 확고한 경영 철학이 크게 기여했다.
#“1등 아니면 안 한다”
이명재 사장의 성공 배경은 탄탄한 노하우와 기술력이다. 명정보기술은 수십 개의 크고 작은 복구업체가 있지만 시장의 70%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고객층도 다양하다. 일반 학생부터 직장인 심지어 검찰, 국정원까지 명정보기술에 의지하고 있다. 주요 거래처도 대기업에서 중소기업까지 고루 분포돼 있다. ‘하드디스크’라는 개념도 생소했던 시절부터 현재까지 한 분야만을 고집한 덕분이다. 업계에서는 ‘PC 종합병원’ ‘데이터복구 마법사’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하드디스크 복구와 데이터 복제라는 틈새 시장에서 2위와 비교할 수 없는 압도적인 1위를 만든 원동력이다. 이 사장은 “서비스 품질과 가격경쟁력 뛰어난데다 복구율 면에서 다른 업체가 따라올 수 없을 정도 기술력을 갖췄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명정보기술이 한 달에 처리하는 서비스 의뢰 건수는 2500∼3000건에 달한다. 단순 계산해도 하루 300건에 달하는 고장 난 하드디스크, 잃어버린 데이터를 찾아 준다는 이야기다. “해마다 경쟁 업체는 늘어나는 데 의뢰 건수가 줄지 않고 오히려 늘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복구율이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복구율 72%를 기록했고 올해는 이를 75%까지 끌어 올릴 계획입니다. 고객에게 믿음을 주었기 때문에 보답을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장은 “본사가 있는 오창 공장에는 데이터 복구와 수리와 관련해서는 세상의 모든 하드웨어 장비와 소프트웨어를 갖추고 있다”고 자신했다. 명정보기술 기술력은 수리를 맡기는 제품만 봐도 알 수 있다. 최신 하드디스크는 물론이고 발전 시설 등에 장착하는 10년이 넘은 테이프 저장장치도 수리를 의뢰해 온다. 해당 제조업체에서 애프터 서비스 기간이 지났고 부품이 없다는 이유로 수리를 포기한 제품이다. 명정보기술은 고객이 믿고 맡긴 만큼 제품 생산국을 샅샅이 뒤져 부품을 찾아내고 또 데이터를 완벽하게 복구하고 있다. 하드웨어 자체가 크게 손상해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복구할 수 있다는 믿음을 준 것이다. 고객 입장에서 의뢰 제품 하나하나에 정성을 쏟은 결과 사업 규모도 나날이 커졌다. 서울·부산 등 전국 5대 도시에 지점과 서비스 센터가 생겼고 매출액도 사업 초기 몇 천만원 수준에서 지난해 200억원을 돌파했다. 올해는 300억원을 목표하고 있다.
#“글로벌 회사가 꿈이다”
이명재 사장은 매일 ‘세계 최고(월드 베스트)’ 수준의 기술력을 가진 복구와 수리 기업을 꿈꾼다. “국내에서는 더 이상 적수가 없습니다. 해외에서도 우리 회사 수준의 기술력을 갖춘 기업은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 입니다.” 이는 결코 빈말이 아니다. 이 사장은 일본을 포함해 인도, 중국, 말레이시아 등에 로얄티를 받고 기술 이전을 해 주고 있다. 해외를 겨냥한 특별한 홍보가 없었지만 오히려 먼저 문의를 해 오는 기업까지 있을 정도다. 해외에서 벌어 들이는 수입은 아직은 100만달러 수준이었지만 매년 꾸준하게 늘고 있다.
이 사장은 “중소기업인만큼 현지 기업과 합작, 기술 이전을 통해 진출하는 방향으로 해외 시장을 뚫고 있다”며 “이 방식은 현지 기업은 명정보기술의 뛰어난 기술력을 전수받고 회사도 단독 진출에 따른 위험을 줄일 수 있어 일거양득”이라고 설명했다. 또 “해외는 온트랙 등 주로 미국 업체가 장악하고 있지만 서비스와 기술에 자신이 있는만큼 이를 뒤짚기는 시간 문제”라고 자신했다.
미래를 위한 준비도 차근차근해 나가고 있다. 먼저 시설 투자다. 명정보기술은 청정도 면에서 ‘클래스100’ 정도가 유지되는 자체 클린룸을 보유하고 있다. 또 대량 수리를 위해 한 번에 수십개 하드디스크를 검사할 수 있는 장비도 자체 개발했다. 최근에는 복구 기술을 역이용해 영구 삭제 프로그램을 개발해 신규 사업에 뛰어 들었다. 신규 사업 가운데 가장 공들이는 분야가 ‘솔리드 스테이트 드라이브(SSD)’ 분야다. 지난 2004년부터 SSD 기술 개발에 나선 명정보기술은 이미 통신·제철·자동차 등 특수 분야를 겨냥한 4∼32기가바이트(GB) 용량의 제품을 활발히 공급하고 있다. 이 사장은 “SSD 분야는 최근 대기업이 사업 진출을 선언했지만 가장 먼저 시제품을 내놓을 정도로 기술력을 확보했다”라며 “이미 제품의 우수성을 인정받아 기업 시장에서는 상당한 고객을 확보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명정보기술은 오는 2010년 설립 20주년을 맞는다. 이 사장은 “이 때까지 저장에서 복구, 삭제까지 데이터와 관련한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는 세계적인 종합 데이터 서비스 기업으로 명정보기술을 만드는 게 남은 목표”라고 힘줘 말했다.
강병준기자 bjkang@
#이명재 사장은 누구=이명재 사장은 57년생으로 충청도 괴산이 고향이다. 당시 수재들만 모인다는 구미의 금호공고를 졸업했다. 이른바 고졸 출신이다. 그러나 그는 이를 부끄럽게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지금도 스스로 실력이 있는 사람은 어느 분야에서든지 두각을 보인다고 자신하고 있다. 그래서 명정보기술은 차별이 없다. 여자도 남자와 똑같이 대우해 주고 학력보다는 실력을 중시한다. 그만큼 직원들의 애사심도 대단하다. 명정보기술 임원진은 ‘명정보 마피아’라 불릴 정도로 끈끈하다. 평균 근무 기간이 10년 이상인 이들은 초기 어려웠던 시절부터 IMF 이후 호황이었던 기간을 같이했다. 지금도 이 사장은 이들이 회사의 가장 큰 자산이라고 자랑하고 있다. 충청도 오창에 본사를 두고 있지만 수많은 우수 인력이 몰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규모는 작지만 오창산업단지 입주 기업 가운데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우량 기업으로 꼽히고 있다.
이 사장은 학교 졸업 후 잠시 ‘방황의 시간’을 보내다가 83년 AMK에 입사해 하드 디스크 드라이브 분야에 처음 발을 담갔다. 이어 90년 창업해 매년 두 자리 이상의 성장을 이어 가 지금의 명정보기술을 만들었다. 회사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만든 후 전문 인력을 위한 교육 기관을 설립해 국가와 산업계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고 싶은 게 조그만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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