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리포트]유럽 IT강국 핀란드, 한국에 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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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유럽 발트해 연안에 위치한 강소국 핀란드는 우리나라에서는 자일리톨 껌의 원산지나 산타클로스의 고향 정도로 알려진 나라다. 그러나, 정작 핀란드를 대표하는 것은 세계적인 휴대폰 기업 노키아를 배출한 막강한 정보통신(IT)산업이다.

노키아는 세계 휴대폰 시장에서 우리나라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치열한 추격에도 불구하고 십수년째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노키아가 핀란드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노키아가 1년 동안 벌어들이는 매출은 핀란드 전체 GDP의 4%에 해당하고 이 회사의 연간 연구개발(R&D) 예산은 핀란드 민간산업 분야 R&D 총투자액의 35%에 이른다. 헬싱키 증권거래소에 상장한 노키아의 시가총액은 헬싱키 증시의 60%를 차지한다.

노키아 본사가 위치한 수도 헬싱키의 페카 사우리 부시장(54)이 한국IT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서울을 찾았다. 사우리 부시장은 “25년 전 핀란드에서는 국민경제가 목재산업에 치우쳐 있다는 우려가 있었지만 요즘에는 노키아라는 한 회사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어 다양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노키아가 없는 핀란드 경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얘기다.

일개 기업이 과연 한 나라의 경제를 얼마나 좌우할 수 있을까. 그는 “노키아가 헬싱키 본사에 고용한 직원은 9500여명으로 헬싱키와 주변도시 우시마(Uusimaa, 노키아의 R&D센터가 위치한 지역)를 아우르는 헬싱키 메트로폴리탄 지역 전체 노동 인구의 2.2%를 차지한다”며 “노키아는 핀란드 민간기업 중 가장 큰 규모의 고용주이자 공공부문까지 포함한다고 해도 헬싱키 시정부에 이어 두 번째”라고 설명했다. 노키아의 수십개 협력사와 노키아 직원들이 이용하는 식당, 엔터테인먼트 등 제반 서비스 산업 종사자들까지 고려한다면 헬싱키 노동인구의 상당수가 이른바 ‘노키아 생태계(Nokia echosystem)’ 안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노키아는 핀란드 정부에 가장 많은 세금을 내는 기업이기도 하다. 이 회사는 지난해 총 13억유로의 세금을 정부에 납부했다.

노키아는 1865년 목재가공업체로 출발해 20세기 후반까지 고무 원자재를 가공해 고무장화·자동차 타이어·케이블 등을 생산하는 업체로 이름을 날렸다. 그러다 80년대 전자제품으로 눈돌려 TV를 출시했고 90년대에 와서는 다른 모든 사업을 매각하고 오로지 핸드폰 한 분야에만 집중하고 있다. 노키아 휴대폰에 대한 핀란드 국민의 애정은 각별하다. 오늘날 핀란드 국민의 86%가 노키아 휴대폰을 사용하고 있다. 사우리 부시장은 “휴대폰뿐 아니라 이제는 다른 회사로 매각한 고무장화 역시 여전히 노키아 브랜드로 팔릴 만큼 노키아는 핀란드의 ‘국민 브랜드’로 널리 사랑받고 있다”고 전했다.

노키아라는 기업의 존재가 IT뿐 아니라 핀란드 전체 산업에 미치는 영향력도 크다. 사우리 부시장은 “노키아가 민간기업 R&D 투자액의 3분의 1이 넘는 큰 자금을 매년 집행하면서 민간 분야 R&D를 활성화하고 다른 기업들의 R&D투자도 진작시키는 효과가 있다”며 “한 나라에 세계적인 기업의 진정한 의미는 비단 그 기업의 고용창출이나 납세규모보다 이 같은 맏형 노릇으로 산업 전반의 시너지를 키우는 역할에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에도 노키아와 같은 세계 최고의 기업이 나올 수 있을까. 이 질문에 사우리 부시장은 “이미 삼성이나 LG와 같은 우량기업이 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물론 삼성, LG가 휴대폰 시장에서 노키아에 뒤처져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TV나 가전 등 다른 분야에서 강점을 많이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부시장과의 인터뷰에 배석한 보좌관 역시 “우리 집에도 32인치 삼성 평판TV가 있는데 성능이 매우 훌륭하다”며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사우리 부시장은 “노키아를 위해 특별히 세금 감면이나 다른 행정적인 절차를 생략하는 등의 편의는 한번도 제공된 적이 없다”며 “한국 정부도 송도비즈니스허브 육성을 통해 세계적인 기업을 유치하고 한국기업의 경쟁력을 키우려면 조세감면이나 행정상의 특혜를 제공하며 스스로의 역할을 부각시키기보다는 비즈니스 및 정치, 행정 시스템을 민주주의, 동등한 기회, 투명성에 기반을 두고 기업과 시민들의 편의를 위해 물류, 교육 등 인프라를 탄탄히 조성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조윤아기자 forange@

#페카 사우리 부시장은

페카 사우리 헬싱키 부시장(54)은 저명한 심리학자이자 핀란드 녹색당을 대표하는 정치가다. 1990년대 핀란드의 영향력 있는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 ‘욜린야’(Yolinja, 핀란드어로 심야뉴스를 뜻함)의 진행자로 활동하기도 한 다채로운 이력의 소유자다. 사우리 부시장은 헬싱키 대학에서 심리학, 교육 등으로 학사 및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1990년에 영국 브루넬 대학에서 인문과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사우리 부시장은 1980년대 중반부터 헬싱키시 정책 등에 활발히 관여하기 시작했으며, 1991년부터 1993년까지 녹색당 총재를 맡아 핀란드의 혁신적인 친환경 정책을 다수 이끌어냈다. 1993년부터 10년간 시의회 의원으로 활동한 그는 2001년에는 시의회 의장, 2003년에는 헬싱키시 부시장으로 선임되며 핀란드 자치정부 고위직에 오른 최초의 녹색당원이 됐다.

#헬싱키 비즈니스 허브(Helsinki Business Hub)

핀란드는 러시아와 유럽 가운데 놓인 발트해 연안국가라는 지정학적 특성을 이용해 헬싱키를 ‘동서양을 잇는 글로벌 비즈니스 허브’로 육성하고 있다. 헬싱키는 외국회사가 법인을 설립하려고 시에 문의했을 때 어느 부서에 전화연락을 해도 특정 담당부서로 전화를 돌리지 않고도 똑같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행정원스톱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전화, 인터넷 설치 등의 절차도 매우 간단해서 유럽의 다른 나라는 1∼2개월 이상 걸리지만 핀란드에서는 며칠 혹은 2∼3주 내에 해결된다. 헬싱키는 19개의 응용과학·일반 대학이 있어 전문인력의 수급이 원활하다. 핀란드는 대학까지 전 교육과정의 수업료가 무료다. 덕분에 헬싱키 거주자의 42%는 고등교육을 받은 고학력 전문인력이며 이 같은 풍부한 인적자원을 바탕으로 헬싱키에서는 IT와 같은 지식기반 산업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기술력 대비 핀란드의 임원급 기술자는 미국 등 다른 나라에 비해 경쟁력이 있고 특히 R&D 고급기술자의 임금경쟁력이 높다. 사우리 부시장은 “미국은 임원들이 보너스나 스톡옵션을 받기 때문에 임금 차이가 있지만 핀란드는 임금 상한이 있기 때문에 임원도 연봉이 높지 않다”고 설명했다. 기술직 임원들은 월 1만유로 정도 월급을 받는데 이는 물가를 고려하지 않고 비교한다면 미국의 절반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