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비메모리, 긴 호흡으로 가자

  “3년 전만 해도 국내에는 자동차에 들어가는 시계를 컨트롤하는 반도체를 만드는 곳이 없었다.” “(요즘 세상에는) 정부가 아무리 강제로 쓰라고 해도 못 쓸 뿐더러 애국심을 발휘하더라도 (안전을 위해서는 아무 제품이나) 쓸 수는 없는 일이다.”

 최근 정부와 반도체연구조합이 마련한 ‘자동차 반도체 산업발전을 위한 간담회’ 자리에서 나온 말들이다. 수요자 측인 자동차업체나 전장업체 관계자들의 이야기지만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다른 분야에 들어가는 제품에 비해 악조건의 테스트를 견뎌내야 하는 자동차 분야기 때문에 더하겠지만 반도체 강국이라는 우리나라의 위상에 비하면 비메모리 분야는 명함조차 꺼내기 부끄러운 게 지금의 현실이다. 메모리 분야에서는 추종을 불허하는 세계 강국이지만 이야기가 비메모리 분야로 옮겨가면 한없이 쪼그라든다.

 그렇다고, 그동안 비메모리 산업을 강화하고 육성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없었던 건 아니다. 메모리 반도체 산업이 본궤도에 오르면서 산학연관에서 끊임없이 강조되던 분야가 비메모리 산업이다. 메모리만으로는 반도체 강국이라고 할 수 없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세계 반도체 시장의 60% 이상을 비메모리 반도체가 차지한다. 세계 반도체 순위 10위 안에 드는 기업 중 80%는 비메모리 사업에 강점을 갖고 있다. 인텔·도시바 등도 메모리 반도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비메모리 분야에서 훨씬 많은 이익을 내고 있다. TI·ST마이크로·르네사스·소니·퀄컴·인피니언 등은 말할 나위도 없다. 유독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반도체만 메모리 반도체 분야의 위력으로 10위권에 들어 있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도 초일류 기업으로 가기 위해 비메모리 반도체 비중을 높여야 한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 하이닉스는 비메모리와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 사업을 강화해 2010년에 세계 시장 3위, 2017년에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세계 최고의 회사가 되겠다고 호언했다.

 삼성전자도 비메모리 분야에 팔을 걷어붙였다. 최근 반도체총괄 사장에 취임한 권오현 사장은 처음으로 국제 행사를 주재한 자리에서 그동안 5대 전략품목을 정해 육성해 온 비메모리 사업에 세 가지 제품군을 더해 8대 전략품목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기대가 되는 대목이다.

 하지만, 삼성전자나 하이닉스나 메모리반도체 시장이 위축된 상황에서 차분히 비메모리 반도체에 투자나 하고 있을 상황은 못 된다. 기업은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이다. 최종 평가는 실적이 말해주기 때문이다. 단기성과에 신경쓰다 보면 자칫 비메모리 분야는 다시 찬밥 신세가 될 수 있다.

 아무리 배짱 있는 전문경영인이라 하더라도 눈앞에서 이뤄지는 실적평가 앞에서는 약해질 수밖에 없다.

 서두에 예로 든 자동차용 반도체는 비메모리 반도체의 대표 주자지만 2∼3년 투자해서 뚫을 수 있는 아이템이 아니다. 지속적인 개발과 제품에 대한 신뢰가 뒷받침돼야 한다. 이 때문에 당장 돈이 되지도 않기에 멀리 내다보고 투자를 해야 한다. 비메모리가 전략 분야라고 한다면 과거 메모리 반도체를 처음 시작했을 때처럼 정부가 반대하더라도 꿋꿋하게 투자할 수 있는 뚝심과 긴 호흡이 필요하다.

주문정기자 mjj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