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용 LG전자 부회장이 거대한 실험 중이다. 아니 한국 기업사 초유의 도전이다. LG전자를 국적 없는 글로벌 마케팅회사로 키우겠다고 나섰다. 8만명 직원 가운데 5만명이 해외근무자고 매출의 80% 이상을 수출로 벌어들이는 회사답게, 사람, 제도, 업무 스타일 모두를 글로벌화하겠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예상범위 안에 있는 정답이다. 충격적인 것은 이를 실행하는 전략이다. 그는 지금껏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방법을 동원했다. 외부쇼크에 의한 내적 변화를 택했다. 일선 마케팅 임원에 외국계 기업 출신 한국인을 영입했다. CEO를 보좌하는 주요 부문 최고 책임자는 아예 외국인으로 채웠다. 얼마 전에는 인사 책임자까지 외국인으로 충원했다. 사내 공용어는 영어다. 임원 회의는 물론이고 보고서, 공식 e메일 작성까지 영어 의무화를 추진 중이다. 그간 기업의 글로벌화를 위한 전략적 선택은 다양했지만 이 같은 전면적 인력 수혈은 처음이다. 제아무리 글로벌기업 이라도 본사의 주요 부문 최고 책임자에 외국인이 이처럼 대거 들어가는 예는 없다. 혁신이 아니라 거의 혁명에 가깝다.
초기 사내의 저항과 비난의 목소리는 일정 부분 잦아들었다. 우선 실적이 좋다. 매출과 이익 모두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주가는 남 부회장 취임 당시에 비해 3배 이상 올랐다. 상황이 이쯤 되면 어지간한 불평 불만은 수면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 상례다. 마케팅 임원에서 C레벨 인사까지 단계적 외부수혈 조치 역시 직원들에게는 완충작용을 했다. 중요한 것은 기존 직원들이 자극받고 있다는 점이다. 초기에는 ‘굴러온 돌’에 대한 배타성이 강했지만 요즈음에는 “배울 것이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영어 문제도 비슷하다. “현실성이 없는데 얼마나 가겠어”에서 “기왕이면 열심히 해보자”로 바뀌는 중이다. 영어 탓에 짧아진 회의시간을 즐기면서 입다문 동료들에게 정서적 유대감을 느꼈지만 사정이 달라졌다. 어느날부터인가 조금씩 말문이 트이는 선후배를 보면서 “나도 해보자”는 강한 자극을 받는다는 직원들이 늘어나고 있다. 직원 상호 간 자극을 통한 업그레드 시너지는 최상의 시나리오다.
그렇다고 연착륙 운운은 아직 이르다. 실적이 흐트러지거나 긴급현안이 발생하면 언제든 남 부회장의 실험과 도전은 논란의 복판에 서게 된다. 다른 기업에서 혹은 정부에서 야심차게 추진했던 외국인 영입과 영어 사용은 거의 실패했다. 기존 직원들과의 커뮤니케이션 부재, 배타적 조직문화는 일반적이다. 환경과 문화차이를 인정한 채 이를 통합해 나가는 당사자의 유연성 결핍도 걸림돌이었다. 윌리엄 라이백 금감원 고문은 영어라는 커뮤니케이션 장애로 하차했다. 내밀한 의사소통이 절대적이지만 언어라는 가림막 탓에 직원들이 다가서길 꺼리는 순간 효용성은 반감된다. 러플린 KAIST 총장은 일방적 시각을 강요하다 앙금만 남기고 떠났다.
남 부회장은 ‘LG’ 브랜드를 글로벌 톱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지상과제를 수행하는 사람이다. 아마도 그의 지향점일 것이다. LG그룹 역시 그에게 기꺼이 총대를 매게 할 것이다. 전략 전술은 그가 마련한다. 남용의 앞날은 그래서 LG와 우리 기업들이 또 다른 의미를 두고 지켜봐야 할 이유가 된다.
이 택 논설실장 etyt@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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