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분간 먹고사는 문제를 걱정해야 할 것 같다. 믿고 싶지 않지만 스태그플레이션 위기가 가시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원유가격이 130달러 이상 치솟으며 제조업 물가가 동반 상승하고, 민간의 소비심리가 극도로 위축되는 최악의 상황이다. 국제원유가가 장기적으로 200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슈퍼 스파이크(super-spike, 유가 초급등) 시대가 도래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경제성장과 물가를 동시에 잡겠다던 이명박 정부의 경제목표는 이미 물 건너간 듯 보인다. 자본주의 체제 모순 중 하나인 경기 침체(stagnation)와 인플레이션(inflation)이 함께하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은 이미 우리 앞에 있다.
전광우 금융위원장은 지난 23일 서울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열린 무역협회 초청 강연에서 “국내 자금시장에서는 장·단기 간 금리차가 축소되고 있어 경기 불안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태”라며 “고유가와 미국 서브프라임 부실 여파 등으로 세계 경제 곳곳에서 경기둔화 징후가 나타나는 동시에 물가가 빠르게 상승해 스태그플레이션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 전망에도 “언제까지 경제예측은 조심스럽다. 그만큼 경제전망이 어렵다. 당분간 금년, 내년은 어렵다는 것이 틀리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 위원장 입에서 ‘스태그플레이션 우려’ 정도로 언급됐지만, 체감경기는 ‘스태그플레이션 그 이상’이다.
문제는 단기간에 끝날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스태그플레이션 원인이 된 원유와 곡물, 원자재 가격 상승이 만성적 경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원유 및 각종 원자재 가격이 고공행진을 선도하고, 여기에 자극받은 소비자 물가 역시 만성적인 가격인상 압박을 받게 된다. 물가를 따라잡기 위해 임금인상이 뒤따라야 하며, 이로써 다시 소비재 가격 상승을 가져오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중국도 변수다. 그간 중국은 화석연료와 각종 원자재를 빨아들이는 블랙홀 역할을 해왔다. 올림픽으로 이어진 중국에서의 개발 붐 또한 원유 및 각종 원자재 가격상승을 부추겼다. 쓰촨성 지진피해 복구도 주목해야 한다. 피해지역 복구를 위해 대규모 물자가 동원된다면 중국은 세계적인 물가 상승을 견인하는 성장판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청와대도 긴장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22일 대국민 담화에서 한미 쇠고기 협상 파동과 관련해 “송구스럽다”는 의미로 사과를 했다. 청와대는 “겸허한 마음으로 국민 비판과 지적을 받아들이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며 고개를 숙였다. 더 이상 쇠고기 협상 문제에 매달려 있을 수 없다는, 현재의 위기의 경제를 서둘러 타개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배어 있다. 이 대통령은 이날 담화에 이어 건국 60주년 기념사업위원회에서도 최근 유가, 식량 원자재 가격 상승, 미국발 금융위기, 세계적인 물가 급등 등으로 “70년대 오일쇼크 이후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며 위기론을 거론했다.
세계는 지금 위기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우리나라에 개소했던 국제통화기금(IMF) 한국사무소마저 오는 9월 10년 만에 폐쇄된다. IMF 한국사무소가 문을 닫는 것은 재정난 때문이다. IMF 한국사무소 측은 “IMF 구조조정과 인원삭감 일환으로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아시아의 많은 사무소가 문을 닫게 됐다”고 밝혔다. IMF는 최근 보유 중인 금을 내다팔 정도로 내부 사정이 좋지 않다. 최근에는 베트남이 수상하다. 지난 21일 베트남 증시는 전 종목이 하한가를 기록하며 60%나 폭락했다. 땅값, 물가가 폭등했고, 무역적자도 크게 늘었다. 우리가 쇠고기 협상문제에 매달릴 수만은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srk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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