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과 실용을 앞세운 새 정부의 대학 및 출연연구기관간 통합이 갈수록 힘겨루기 싸움으로 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서울대, KAIST, 충남대 등이 KIST, 생명연, 기초과학지원연에 통합 연계 의사를 전달 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해당 출연연의 반대세력이 조직화되고 있다. 급기야는 지난 29일 과기계 최대 노조인 공공연구조합이 기자회견을 통해 “졸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대학-출연연 통폐합 등 공공 연구기관에 대한 구조조정 계획을 철회하라”는 주장을 펴기에 이르렀다. 생명연 노조 역시 “KAIST는 통합 추진을 즉각 철회하라”며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가 익히 보아온 노조의 과격 시위는 물론 정부나 해당 대학과의 정면 충돌이 불을 보듯 뻔하다. 더욱이 키를 쥐고 있는 대부분의 출연연 책임자들은 사표를 제출했고 후임자 공모 절차가 한 창이다. 사람을 바꾸고 조직을 변화시키는 일정만 남은 셈이다. 그 와중에 통합론과 반대론이 거세게 맞닥뜨릴 것이며 과기계에 한바탕 태풍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새 정부의 국정 철학에 따른 일정 정도의 과기계 재편은 수용해야 한다. 비록 정치바람을 타는 곳이 아닐지라도 좀 더 효율적이고 시너지가 기대 되는 정책이라면 추진될 것이다. 아울러 출연연의 잘못된 관행이나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과감히 메스를 댈 필요가 있다. 하지만 조건이 붙는다. 왜 바꿔야 하는 지, 그래서 어떻게 변화하고 국가 경쟁력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지에 대한 논리와 밑그림을 제시하는 것이다. 국민을 설득하고 연구기관들의 인정도 받아야 한다. 어렵고 지난한 작업이다. 반대론자들과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고 설득하는 일은 누구에게도 힘든 일이다. 그래도 해야한다. 목적과 비전을 공유하지 않은 상태에서, “따라오라”고 해봐야 파열음만 초래할 뿐이다.
출연연 구성원들은 이미 IMF 학습효과를 갖고 있다. 효율을 내걸었지만 사실은 무자비한 구조조정에 내몰린 아픈 기억이 있다. 노조의 반발에는 “결국은 사람 조직 자르기”아니냐는 의심도 내재되어 있을 것이다. 통합을 추진하는 주체들도 이처럼 예민한 문제에 대해 당당하고 분명한 입장을 전달하고 대화할 필요가 있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대안을 발견할 수도 있다. 통폐합 중간 지대에서의 과도기적 운용을 고려하거나 우선순위에 따라 단계별로 처리하는 방안이 나올 수도 있다. 어떤 경우이건 대학과 연구기관의 경쟁력이 향상되고 궁극적으로는 우리 과학기술의 업그레이드를 이룰 수 있는 비전을 만들어야 한다.
확정되지 않은 정책이 흘러나오고 대화 보다는 즉각적인 반대시위로 맞서는 이같은 모습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연구체계 재편은 인내를 밑바탕으로 한 정부의 논리, 대안 있는 연구기관의 반대가 토론과 대화를 통해 해결되어야 한다. 과기계는 우리 사회 최고 지성인 집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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