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심판.’
세계 와인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이렇게 시작됐다. 1976년 미국독립 200주년 행사 중 하나로 와인평가회가 열렸다. 프랑스의 대표적 소믈리에 10명을 초청해 미국과 프랑스 대표 와인을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하게 했다. 프랑스의 내로라하는 소믈리에가 최고의 와인으로 선정한 것은, 와인의 본고장인 자국에서 난 제품이 아니라 뜻밖에도 미국산 와인이었다. 레드와 화이트 양 부문 모두 최고 제품에 캘리포니아 와인이 선정됐다. 파리의 심판은 신대륙 와인을 비약적으로 성장시킨 계기가 됐다.
이 사건으로 와인 애호가들은 그동안의 절대적인 기준이 무의미했음을 깨달았다. 와인은 가격이나 평판에 매달릴 필요도 없고, 역사(빈티지)나 생산지(와이너리)에 전적으로 의존할 필요도 없다.
최근의 와인붐을 돌아보자. 뜻 있는 와인전문가들은 와인을 즐긴다는 것이 와인에 대한 지식을 쌓아 가는 게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와인을 찾아내는 과정이 와인을 즐기는 길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패러다임의 변화는 제품의 마케팅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한다. 마케팅에서도 절대적인 기준은 없다. 기업은 살아 숨쉬는 유기체다. 남들과 차별화되는 자신만의 뭔가를 반드시 가지고 있게 마련이다.
한 기업의 제품이 출시되기까지는 많은 인력, 자금, 기술이 투입되고 시행착오를 동반한다. 이런 구조에서 다양한 변수가 생겨나게 되고, 자신만의 특징을 갖게 되는 것이다. 제품만 그런 게 아니라 주변환경도 시시각각 달라진다. 따라서 이를 기반으로 한 마케팅은 절대적일 수 없다.
최근의 마케팅은 온라인의 활성화와 마케팅 기법의 다양화로 많은 인력과 예산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전략적인 마케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특성에 맞춘 마케팅을 실행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면 절반은 성공한 셈이다.
산업사회가 막을 내리고 고도정보사회가 되면서 마케팅의 중요성은 점차 커지고 있다. 하지만 파리의 심판에서 깨달은 것처럼 한 가지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것만으로도 마케팅의 중요한 열쇠는 이미 손 안에 넣은 셈이다. 전통적인 마케팅에 매달리지 않는, 자신의 회사와 제품에 맞는 마케팅이 최고의 마케팅이다.
김성훈 미디언스 실장 hoon@medianceco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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