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온도계 이야기

 온도계는 과학기술이 만들어낸 위대한 발명품이다. 온도계가 등장하면서 인간은 과학에 필요한 액체의 어는점과 끓는점, 절대온도를 측정할 수 있게 됐다. 온도계는 갈릴레이와 그의 제자들에 의해 개발됐다. 이후 1742년 스위덴 천문학자 셀시우스가 등장, 오늘날 통용하는 섭씨 온도계를 만들어냈다.

 온도계 탄생 이후 사람들은 “많이 뜨겁다, 무척 차갑다, 미적지근하다”는 말 대신, ‘영하 몇 도, 영상 몇 도, 섭씨 몇 도’라는 수치화된 온도 개념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두루뭉술하던 온도 개념은 숫자로 표준화됐다. 정확한 온도를 알게 되면서, 과학기술은 일취월장했다. 화학공정이나, 반도체 제조공정, 초전도체, 바이오 산업, 유전공학도 온도계와 함께 발전했다.

일반적으로 실내 적정온도는 겨울철 18∼20℃, 여름철 26∼28℃라고 한다. ‘일반적인’ 권장 온도일 뿐이다. 추위를 잘 타는 사람에게 18∼20℃의 온도는 두터운 점퍼라도 걸쳐야 추위를 겨우 면할 수 있는 ‘살 떨리는’ 기온이며, 더위를 잘 타는 많은 사람에게 26∼28℃는 ‘찜통더위’다. 여름밤 잠 못 드는 열대야 기준도 섭씨 25℃니, 여름철 적정온도라고 하는 26℃는 가히 ‘살인적인 더위’다.

불행하게도 ‘과학기술의 승리’라고 불리는 온도계도, 인간의 영역에서는 별로 정확하지 못하다. 사람마다 느끼는 온도는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신의 신체적 상태나, 처한 공간, 습도, 바람의 영향에 따라 온도를 다르게 느낀다. 체감온도다. 입천장이 델 정도로 뜨거운 국물을 마시며, 또는 섭씨 90℃가 넘는 사우나에서 땀을 흘리면서 ‘시원하다’고 말하는 우리 민족 앞에서 수은 온도계의 눈금은 그저 참고사항일 뿐이다.

지난 24일 정부는 개인주택이나, 사무공간의 실내 적정온도를 통제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세계 원유 소비 7위 국가인 우리나라 위치에서 고유가 시대를 넘기 위한 ‘특단’의 에너지 대책이라고 내놨겠지만, 너무했다. 정부는 연내 ‘에너지이용 합리화법’을 고쳐 병원·양로원 등 특수시설을 뺀 모든 건물에 적정온도를 지키도록 관리하며, 지키지 않으면 과태료를 물리겠다고 엄포를 놨다. 내년에는 대형 공공시설과 교육·위락시설, 2010년엔 대형 민간 업무용 시설, 3년 뒤인 2011년에는 주택·판매시설도 이 기준을 지켜야 한다.

법대로라면 앞으로 겨울철 18∼20℃, 여름철 26∼28℃라는 기준을 지키지 않는 가정이나 회사는 과태료를 내야 한다. 음주단속기처럼, 적정온도 범위에서 벗어나면 ‘삐’ 하는 온도 단속기를 들고다니는 공무원도 나올지 모를 일이다.

‘컴퓨터 불도저’ 이명박 대통령의 추진력이라면 가정과 회사를 대상으로 온도를 통제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국민 현실은 뒷전이 될 수밖에 없다. 인간의 특수성은 물론이고 직장과 영업장 등 처한 환경이 다르다는 점을 정부 당국이 무시했기 때문이다. 상점이나 교육시설, 각종 서비스업 종사자, 집중력 있는 연구가 필요한 연구소에서 한여름 26℃의 사무실 온도를 이해할 수 있을까. 26℃의 사무실에서 해외 바이어와 수출 상담이 가능할까.

우리나라는 세계 에어컨 수출 1위 국가다. 사람들이 더위를 느끼면 느낄수록 가전 매출이 올라가는 에어컨 생산 대국이다. 에어컨 회사 마케팅 직원은 이명박정부에 이런 말을 했다. “알래스카에 가서도 에어컨을 팔아야 하는 심정을 아느냐”고.

이명박정부는 ‘온도계’를 믿고, 회사와 가정의 적정온도를 통제하겠다고 했다. 지난 정권의 아마추어리즘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개인과 가정의 체감온도를 통제하는 정부’. 기네스북에 오를 일이다.

김상룡기자 sr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