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의 조직구성과 보직인사가 사실상 마무리됐다. 아직 실국장급 인사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이번주 마무리될 예정이고, 과장급 이하 실무인사는 이미 끝낸 상황이다.
속도로 보면 정부부처 중 제일 늦게 시작하는 셈이다. 그만큼 방통위의 중요성과 이질적 조직구성의 어려움, 정파 간 역학관계, 이에 따른 대내외 시선이 집중된 부처라는 의미기도 하다. 방송과 통신을 두루 관장하는 규제와 진흥 기능을 담은만큼 당연할 것이다.
방송으로 보면 정치적 독립성과 미디어의 공공성 구현이 최대 관심사일 것이다. 통신 쪽에서는 산업별, 선후발주자 간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정책적 지향점에 많은 관심을 쏟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산업적 관점을 중요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방송산업과 통신산업, 나아가 방통 융합산업은 말 그대로 차세대 산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통치와 단순한 소통의 시대에서 먹거리 산업의 새 시대로 이동하고 있다는 의미기도 하다. 새 시대에 맞는 규제 철학과 정책적 비전 수립이 시급하다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제1기 방통위 최시중호(號)의 산업적 지향점은 분명할 것 같다. 탈(脫)정치와 탈규제, 규제의 대폭적인 완화가 바로 그것이다. 다만, 게임의 공정한 룰을 감안한다면 미디어 간, 통신업체 간 유효경쟁 정책은 일정 부분 효과가 있을 것이다.
대표적인 게 방통위와 공정위 간 중복규제다. 이미 이 같은 논란을 야기했거나 앞으로 야기할 가능성이 있는 조항은 수정해야 할 것이다. SK텔레콤의 하나로텔레콤 인가 조건이나 유선통신사업자의 요금 담합 건과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얘기다.
주파수 정책도 재정비해야 한다. 이미 회수 및 재분배 로드맵을 세우고는 있지만 차제에 확실한 규제 철학을 기반으로 한 새 정책을 내놔야 할 것이다. 상호접속을 포함한 요금정책도 손질해야 함은 물론이고 새 융합서비스 관련 법 조항도 마무리해야 한다. 지배적사업자에 대한 외국인 지분제한 문제도 들여다볼 일이다. 그동안 꾸준히 제기돼온 IDC의 전기요금을 산업용으로 분류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
디지털방송 활성화도 시급한 과제다. 케이블TV업계는 이전부터 소유와 겸영 규제를 더 완화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매체 및 사업자 규모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방송법과 장애인차별법금지법의 개선과 규제 일원화 요구도 거세다.
그런가 하면 주파수 대역 및 압축 표준 규제를 개선하고 MVNO 등 이동통신시장 진입규제 개선을 위한 보다 실질적인 조치도 바라고 있다. 신문과 방송의 겸영과 공영방송의 민영화 여부도 들여다봐야 한다. 나아가 IT를 자원외교화하는 방안도 고심해야 한다.
방통위는 5인 합의제 위원회다. 이 때문에 주요 이슈에는 첨예한 의견대립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 특히 정치적 해석을 필요로 하는 사안은 더욱 그렇다.
하지만 대통령 직속 기구라는 점에서 정부와 여당의 지원을 받는 최시중 위원장의 입김은 절대적이다. 외형상 기구조직이 커지기도 했지만 방송과 통신을 아우르는 신산업 정책의 상당 부분을 컨트롤하게 됐기 때문이다.
‘내명(內明)’이라고나 할까. 최 위원장은 이해 당사자들의 말을 귀에 담고 신중하게 정책을 결정하겠다는 의지를 이 같은 단어 하나로 표명했다. 새 융합산업에 관심을 기울이겠다는 뜻으로 ‘녹명(鹿鳴)’이란 말도 강조했다.
방통위 최시중호가 가야 할 길을 압축한 것에 다름아닐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산업, 새 정책에 대한 기대도 묻어났다. 최시중호는 각계의 이 같은 의견을 수렴, 최선의 규제와 진흥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의 동의를 구하지 못한 상태에서 취임한 불명예를 벗을 수 있다.
<박승정 정보미디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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