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길 티유미디어 사장에게 ’통신CEO’란 표현을 쓰면 질색을 한다. 위성DMB 티유는 통신이 아닌 방송사란 것이다. 그의 논리가 의아스럽긴 하지만 심정적 이해는 가능하다. ’통신’의 정체성으로 ’방송’에 접근하는 것이 얼마나 지난한 일인지는 티유의 지나온 날들이 증명한다. 말이 좋아 방송통신 융합이지 거대 통신자본과 방송간 영역싸움에 다름 아니다. 콘텐츠를 쥐고 있는 기존 방송쪽의 견제는 절대적이었다. 지상파 재전송 하나 해결하는데 세월 다 보냈다. 규제는 정통부와 방송위 양쪽에서 동시에 받았다. ’공익성’에 발목 잡혀 킬러앱은 커녕 변변한 수익모델 한번 제대로 승부한 적 없다. 결국 한솥밥 먹던 수많은 직원들 내 보내고 간신히 연명할만큼의 증자를 받았다. 지상파 DMB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 황금알을 낳을 것 같았지만 기득권의 성벽은 높았다. 뉴미디어로 각광 받던 DMB는 출발 시점부터 몰락의 길을 걸었다. 서 사장 바람은 "원 없이 사업한 번 해보는 것"이다.
요즈음은 IPTV가 뜬다. 하지만 수상하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우여곡절 끝에 마련한 시행령은 집중포화에 시달린다. 회계분리만으로 KT가 이 사업에 진출할 수 있고 망 개방 역시 제한적 허용을 인정한 시행령이 일방적이란 것이다. 케이블쪽은 "미디어 산업간 균형발전 시각은 사라지고 방통위가 특정업체의 편만 들었다"며 강력 반발했다. 인터넷쪽 역시 "IPTV법이 아니라 KT법"이라며 노골적인 불만을 토로했다. 거대 지상파 방송사들은 속내를 드러내지 않지만 흔쾌한 것은 아닌 모양이다. 하나로텔레콤이나 LG데이콤 같은 통신사들은 득실 따지기에 바쁘다. 사정이 이쯤되자 저마다 조만간 열릴 공청회를 벼르고 있다.
이번에는 IPTV가 복사본을 만들고 있다. 새로운 서비스, 미디어를 허가할 때마다 똑같은 모습이다. 이해관계자들이 죽기살기로 싸운다. 방통융합의 핵으로 신성장 동력 육성이니 뭐니 하는 말은 구호일 뿐이다. 당사자들은 제로섬 게임을 벌인다. 서로의 영역 지키고, 가입자 이탈 막는 것이 급선무이다. 방통위가 신도 아닌데 모두를 만족시키는 ’경쟁의 룰’을 내놓을 수는 없다. 그나마 가장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대안을 찾는다. 갈등은 증폭되고 이대로라면 대체 언제쯤 IPTV가 서비스될 지 아무도 모른다. 그 와중에 일본과 유럽은 분야별, 단계별 국제 표준화를 차곡차곡 챙기고 있다.
IPTV공방에는 정작 중요한 요소가 빠졌다. 사업성과 지속성이다. 가뜩이나 미디어 과잉시대이다. 오히려 사용친화력 순서에 따라 단순화 시대로 되돌아가고 있다. 플랫폼은 넘쳐나는데 콘텐츠가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판에 IPTV가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유인책이 있는 지 묻고 싶다. 다양하고 질 좋은 서비스가 곧 대박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동전화 제외하면 그 많던 신규 통신 방송 서비스 가운데 살아남은 분야 거의 없다. 그물처럼 촘촘한 규제틀과 당장의 밥그릇 다툼에 몰두한 이해 당사자들 탓이다.
이제는 세력간 유불리가 아니라 시장 성공에 머리를 맞대야할 시점이다. 가치가 창출되어야 성장엔진 돌린다. 룰 미팅에서 진 빼고 링에 올라가자 마자 쓰러지는 IPTV라면 DMB 꼴 나기 십상이다. 방통위가 중심 잡아야 한다. IPTV 도입하는 이유를 먼저 새기고 규제와 경쟁룰 세우면 된다. 붕어빵에는 붕어가 아니라 팥이 들어있다.
이 택 논설실장 ety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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