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미디어포럼]PAR, 기계적 평등의 함정

지금은 수그러들고 있지만 ‘원소스 멀티유스’란 용어는 오랫동안 대단한 위세를 떨쳤다. 일을 시키는 입장에서는 노동 강도 제고를 위해 원소스 멀티유스를 권했고, 일 벌이기 좋아하는 사람 역시 업무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원소스 멀티유스를 강조했다.

 이제 더 이상 진부한 원소스 멀티유스를 자랑으로 떠들어대진 않지만 환상은 아직도 미디어 업계를 떠돌고 있다. 그런데 이같은 환상이 업계 전체에 큰 해악을 끼치고 있어 문제다.

 최근 미디어 업계에서는 이른바 ‘PAR(Program Access Rule)’에 대해 얘기가 많다. 프로그램 접근 규칙 또는 콘텐츠 동등 접근권이라고 번역되는 용어다. 그런데 위성방송이나 IPTV 같은 후발 방송 플랫폼 사업자들이 지나칠 정도로 강조하고 있는 PAR는 사실, 원소스 멀티유스의 다른 이름이다.

 요약하면 케이블에도 넣었으니, 위성과 IPTV에도 채널을 넣어야 한다고 PP를 윽박지르는 논리가 바로 PAR다. 언뜻 좋아 보일 수도 있다. ‘플랫폼 사업자를 차별하지 말고 동등하게 공급하라’는 것이다. 원소스로 멀티유스 할 수 있으니 PP에게도 얼마나 경제적인가. 그러나 잠시동안의 숙고로도 이런 담론들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알 수 있다.

 우리나라 TV 시청가구를 1800만 정도로 말한다. 그 중 1400만이 케이블TV를, 200만이 위성을 통해 TV를 본다. 그런데 케이블의 채널 구성, 위성의 채널 구성, 그리고 이제 막 시작하고 있는 IPTV의 채널 구성이 똑같다면, 그렇게 PAR가 100% 실현된다면 그것은 좋은 일일까. 역시 원소스 멀티유스가 최고라고 박수 쳐 줘야 할까.

 PAR가 100% 실현돼 모든 플랫폼의 채널 구성이 똑같아질 경우를 생각해 보자. 케이블, 위성, IPTV는 똑같은 상품 패키지로 시청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저가 수신료 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은 확실히 코미디에 가깝다.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플랫폼 사업자를 중복 양산시킨 결과가 고작 싼 값에 TV 보게 하는 일이란 말인가. 마치 도미노처럼 싸구려 수신료는 싸구려 콘텐츠를 양산할 것이고 싸구려 콘텐츠의 양산은 미디어 업계 전체의 경쟁력을 앗아갈 것이다. 플랫폼의 분산으로 광고주에게 소구할 수 있는 능력이 약화될 수도 있다는 업계 일각의 우려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PAR 또는 원소스 멀티유스의 결과는 미디어 업계의 황폐화다.

 최근의 PAR 도입 논의가 사업자들의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저해한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PAR는 PP의 신규 플랫폼에 대한 수신료 협상을 무력화한다. PP와 플랫폼간 협상은 가격과 조건에 따라 자율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당연하고 바람직하다.

 수익 창출에 도움이 되는 신규 시장 진입을 마다할 사업자는 아무도 없다. 채널사업자가 신규 시장 진입 시기와 조건 등을 전략적으로 판단하면서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으면 그 뿐이다. 태생적으로 무료 보편 서비스인 공영방송, 정부가 지원하는 공익 공공채널도 아닌, 일반PP에게 PAR를 적용하는 것은 기계적 평등을 강요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중요한 것은 후발 뉴미디어인 위성과 IPTV의 성장이 기존 PP의 광고시장을 위축시키지 않으면서 동반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신규 플랫폼이 기존 매체와 차별화된 콘텐츠를 공급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1조원 수준으로 성장한 유료방송 광고시장을 지속적으로 활성화시키면서 디지털 전환과 신규 플랫폼 안착을 유도하는 정책이 필요한 것이다.

 그같은 정책을 통해 시청자들이 다양한 유료방송을 중복 가입하는 단계까지 시장 상황을 조성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궁극적으로는 수신료 중심 모델로 유료방송 시장의 체질을 개선하는 문제까지 생각해야 할 것이다. PP들이 방송 원가 구조에 기반한 정상적인 수신료 배분을 받을 수 있는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현실적으로는 방송 플랫폼 간 경쟁에 따른 방송 수신료 덤핑 방지 방안을 마련하는 일과 연계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PAR는 기본적으로 플랫폼 중심의 매체 정책이란 점을 정책 결정권자들이 생각해줬으면 한다. 그리고 위성에 이어 IPTV라는 새로운 방송 플랫폼이 기지개를 펴는 바로 지금이, 플랫폼 중심의 미디어 정책을 콘텐츠 중심으로 전환할 수 있는 적기일 것이다.

◆방효선 CJ미디어 영업본부장 banghs@cj.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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