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만 멀대 같이 컸지 가창력은 별로였다. 게다가 툭 하면 관객을 향해 발길질을 해대는 모습 하고는…’ 가수 김장훈의 첫인상은 그랬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를 보면 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그의 노래를 들으면 희망이 솟고 그의 발차기엔 힘이 넘쳐 보였다. 그는 어려운 환경에 처한 사람들을 보면 앞뒤 안 가리고 도움의 손길을 건넨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기부 천사’다. 데뷔 후 10년간 벌써 50억원에 달하는 돈을 기부했지만 정작 자신은 보증금 5000만원에 월세로 살고 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도움을 줬던 사람들이 고맙다며 찾아와 줄 때면 그것으로 행복하다고 했다.
얼마 전 김장훈의 선행 스토리를 담은 모 방송국 프로그램을 본 전국 각지의 시청자로부터 그에게 기부를 하고 싶다는 전화가 쇄도했다. 하지만 김장훈은 마음만 받겠다며 이를 정중히 거절했다. 한 개인이 사람들한테 기부를 받는다는 게 할 수 없는 일 같다는 게 거절한 이유다. 다만 기업에서 도와준다면 받을 요량은 있다고 했다. 기업에서 도움을 받겠다는 뜻보다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최근 들어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내년부터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을 인증하는 국제표준인 ISO26000이 도입될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는 기업들은 투자대상에서 제외되고 국제거래에서 불이익을 당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인지 요즘 기업들 사이에선 사회적 책임경영이 화두다. 하지만 정작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는 기업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든 게 현실이다.
오랜 기간 꾸준히 주목받는 기업평가 중 하나가 ‘가장 존경받는 기업’이다. 1997년 이후 포천과 헤이그룹이 공동 작업으로 매년 발표하는 존경받는 기업 순위는 세계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30개의 산업 분야로 나눠 1만명 이상의 기업 경영진, 각 산업 전문가, 전문 애널리스트가 평가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비롯해 인재관리, 경영의 질, 글로벌 경영 등 9가지를 평가해 순위를 매긴다. 그런데 아쉽게도 최근 발표된 올해의 존경받는 50대 기업명단에 한국 기업은 한 곳도 들어가지 못했다. 지난해엔 삼성전자가 34위에 랭크됐었다. 미국 컴퓨터업체인 애플이 2008년 가장 존경받는 기업으로 선정됐다. 지난해 1위였던 GE는 올해 한 계단 내려앉아 2위를 차지했다.
존경받는 기업이 되기 위해 기업이 추구해야 할 최상위 가치는 신뢰다. 주주·종업원·고객·사회에서 신뢰를 얻지 못한다면 그 기업에는 미래도 희망도 없다. 상생 경영의 실천도 빼놓을 수 없는 항목이다. 이익만을 추구하는 기업에는 더 이상 ‘존경’이라는 단어가 부여될 수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존경받는 기업이 되려면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높아진 국민 여론에 부응할 수 있는 활동을 펼쳐야 한다.
김장훈의 선행 소식을 접할 때마다 사람들은 ‘기업이 할 일을 개인이 다 하고 있는 것 같다’고 입을 모은다. 김장훈의 선행 소식도 반갑지만 이제는 기업들이 그 자리를 대신 채웠으면 한다. 이를 통해 한국의 주요 기업들이 국민의 열열한 지지 속에 ‘존경받는 기업’ 상위권에 나란히 오르는 것도 한번쯤 보고 싶다.
김종윤<탐사보도팀장> jy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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