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택칼럼]’깜도 안 되는’ 낙하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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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효석 통합민주당 원내대표가 업계에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지난 1998년이다. 중앙대 경영대학장이던 그가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원장으로 선임됐다. 당시에도 논란이 있었다. DJ 캠프에서 일했다느니, 모 권력실세와 친분이 두텁다느니 하는 입방아였다. 한국 최고의 정보통신 싱크탱크인 KISDI 원장 경력으로는 전혀 손색이 없는데도, 인사에는 늘 뒷말이 따라 붙게 마련이었다. 행시 출신의 경영학 박사인 그는 통신 경쟁정책과 IT입국의 이론적 틀을 제공했다. 그에게는 적어도 자질과 능력 시비는 없었다. 일부 호사가들의 뒷담화는 통과의례성 해프닝에 불과했다.

 파워엘리트의 대이동이 시작됐다. 대선과 총선을 거쳐 인사 피라미드의 마지막 단계인 정부 산하기관 및 단체·공기업 책임자들이 물갈이 태풍에 휩싸였다. 세력 교체는 결국 사람을 통해서 완결된다. 정권이 바뀌었으니 당연한 수순이다. 총선을 의식해 한발 물러섰던 정부가 이제는 노골적이다. 참여정부가 임명한 공기업 사장·기관장은 모두 재신임을 받으라며 사표를 내라 윽박지른다. 전문가 집단인 IT 정보통신분야 역시 인사 쓰나미를 피해가지는 못할 것이다. 벌써부터 관심은 누가 살아남는지에 쏠려 있다. 더불어 어떤 인물이 새롭게 수혈될지가 화제다. 늘 그랬던 것처럼 때 이른 하마평도 한창이다. 모 인사는 정권이 배려할 대상이고 또 다른 인물은 실세와 학연·지연으로 얽혀 기관장 한 자리는 떼 놓은 당상이란 말까지 나올 정도다. 이런 탓일까. 여론은 온통 낙하산 인사를 우려하고 경계하는 목소리로 가득하다.

 하지만 우리가 진정 걱정하는 것은 인사 원칙과 철학의 훼손이다. 가치와 비전을 공유하는 사람들로 새 정권을 이끌어가는 것은 당연하다. 임기제를 강조하지만 국민에게 더 나은 봉사가 가능한 인물이 있다면 교체할 수 있다. 문제는 ‘깜도 안 되는’ 사람들이 단지 정권의 필요에 의해서 낙하산으로 내려오는 일이다. 공기업이나 산하기관장을 정권의 전리품쯤으로 치부하는 정치권의 한심스러운 인식 수준은 별로 달라진 것 같지 않아 더욱 그렇다. 조각 파동이나 비례대표 의원 선정이 보여준 것은 80년대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우리 권력의 현주소다.

 새 정부도 이런 기류를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인사는 철저한 능력과 전문성으로 단행한다는 방침을 천명했다. 그럼에도 불안하다. 능력과 전문성이 혹 ‘그들만의 잣대’로 평가되는 것은 아닌지 되묻고 싶다. 더구나 해괴한 논리까지 등장했다. 가급적 정부출신은 배제한다고 한다. 이는 역차별이고 실용주의 인사 원칙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관료·학자·기업인 누구라도 같은 조건에서 경쟁해야 한다. 누가 더 국민을 잘 섬기는지만 따지면 된다. 참여정부의 실정에는 ‘깜도 안 되는’ 인물들의 득세가 깔려 있었다. 국민의 눈높이와는 동떨어진 채, 인사 때마다 “능력과 자질을 최우선 고려했다”는 ‘그들만의 기준’을 강요했다.

 IT 정보통신분야의 인사 대상만 줄잡아 수십명이다.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자리들이다. ‘깜도 안 되는’ 인물들이 차고 들어왔다가는 당장 휘청할 수밖에 없는 동네다. 이 시장은 제 능력에 차고 넘치는 감투 쓰고 자리 지키는 사장·기관장 봐줄 만큼 한가하지 못하다. ‘보은 인사’ ‘청탁 인사’ ‘낙하산 인사’가 안줏거리로 올라오기에는 IT 정보통신분야의 현실이 너무 절박하다. 국민과 시장이 지켜본다.

 이 택 논설실장 ety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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