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포럼]기록하고 살려야 할 `우리 IT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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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국 여행을 하면 우리끼리 매일 지지고 볶으면서 살다 보니 느끼지 못해서 그렇지 우리나라가 참 살기 좋은 나라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동시에 외국 여행은 우리나라가 좀 더 위대한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지금 무엇이 부족한지를 깨닫게 해준다.

 얼마 전 체코의 수도 프라하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일정을 쪼개어 방문한 몇몇 관광지 중에 유독 입장료를 내야 하는 곳이 있었다. 원래는 프라하 성을 지키는 병사들의 막사로 사용하기 위해 건설됐으나 16세기 후반 연금술사와 금은 세공사들이 살던 곳이다. 지금은 일부 공간에 중세 때의 투구나 장신구 등을 전시하고 있을 뿐 대부분이 기념품점이나 선물 상점으로 이용되고 있는 100미터 남짓한 좁고 평범한 골목으로 황금소로(Golden Lane)라는 이름에 비해서는 너무나 평범했다.

 솔직히 처음에는 입장료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대한 황제가 살던 궁전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가의 예술품들을 소장하고 있는 박물관이나 미술관도 아닌 그저 평범한 골목을 관람하는 데 상당한 액수의 입장료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곳이 왜 프라하의 대표적인 관광명소인지, 프라하를 방문하는 많은 사람이 왜 찾는지를 깨닫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말해 그곳은 실존주의 대작가 카프카의 체온과 영혼이 배어 있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약 100년 전 카프카가 ‘성(城)’ ‘변신’ 등을 집필했던 곳으로 카프카의 여동생이 마련해 준 그 좁은 골목 22번지의 작은 집이 그대로 보존돼 있었다.

 체코 프라하 한 귀퉁이의 좁고 평범한 골목길 황금소로를 방문하고 나서 비록 휘황찬란한 샹들리에와 카펫(하드웨어)이 아닐지라도 그곳에 인간의 따뜻한 체온과 영혼(소프트웨어)이 배어 있다면 수많은 사람이 모인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달았다.

 최근 이명박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설마했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정보통신부가 해체되고야 만 것이다. 작년 말 대통령 선거 때 예년과 달리 선거 공약에서 IT 전략이 중요하게 부각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명박정부에서는 IT 분야의 투자가 줄어드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는 있었지만, 정보통신부가 해체되리라고는 솔직히 상상하지 못했다.

 물론 새로운 이명박정부의 국정철학인 작은정부 구현을 위해 정보통신부가 해체됐겠지만, 문제는 불과 몇 달 전 지난 정부시절까지만 해도 1등 부처로 평가되던 정보통신부가 어쩌다가 그처럼 평가절하돼 맥없이 해체됐는가 하는 것이다. 나는 정보통신부가 해체될 수밖에 없었던 또 다른 이유가 없나 하는 생각에 정보통신 분야의 역사 기록이라고 할 수 있는 국가정보화백서를 펼쳐 보다 체코 프라하의 황금소로가 주는 교훈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국가정보화백서는 우리가 지난 20년간 국가전산망을 어떻게 구축했고, 전자정부는 어떻게 추진했으며 또 반도체와 휴대폰 수출이 얼마나 증가했다는 자화자찬식 데이터로 가득 차 있었다. 정작 중요한 20여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IT 최강 국가를 건설하는 데 참여한 주역들의 땀과 노력은 기록돼 있지 않았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지금으로부터 25년 전 우리나라가 아직 민주화되지 못했던 시절, 당시로서는 정말 파격적이던 행정전산망 사업과 TDX 개발을 입안하고 추진함으로서 오늘날 우리 대한민국을 IT 강국으로 이끈 오명, 홍성원, 정홍식, 이용태, 이철수 등의 혜안과 흘린 땀, MS의 막강한 공세에 대항하는 마지막 보루 ‘아래아한글’을 개발한 이찬진, 컴퓨터 의사 안철수 등등….

 두 달 전 우리는 600년 역사의 남대문을 태워먹는 역사의 죄를 지은 세대가 됐다. 공을 쌓기는 어렵지만, 허물기는 순식간이라는 것을 절감했다. 이제는 정보통신부의 해체로 인해 지난 20여년간 IT 각 분야에 혁혁한 공헌을 한 분들의 노력과 업적들이 사라질 위험에 처하게 돼 마음이 착잡하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했던가. 이제라도 우리의 IT 역사를 기록하고 보존해 진정한 의미에서 영혼이 배어 있는 IT 세계 최강 국가로 재도약하기를 기대해 본다.

경희대학교 취업진로지원처장 김준형 교수 jhkim@khc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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