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각 부처의 업무보고가 막바지에 치닫고 있다. 매끄럽지 못한 출발이었지만 인선도 마무리에 이르렀다. 발목을 잡든 말든 시간은 흘러가고 어차피 인선은 새 정부의 뜻대로 돼가고 있다. 깔끔한 마무리였으면 좋겠지만 인사는 언제나 뒷얘기를 남기게 마련이다. 정권의 연속이 아닌 교체라면 ‘구원(舊怨)’이 남아 더욱 말이 많다. 탄압이니, 보복이니 하며 목소리를 높일 수밖에 없는 것이 ‘놓친 자’의 울분이다. 하지만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 것’이 인사의 기본이다.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코드 인사 물갈이’ 발언은 해도 너무했다 싶다. 직설화법은 이해하기 싶지만 당하는 사람의 상처는 깊다. 하다 못해 기업에서 사람을 정리할 때도 여유를 주고 돌려 말하는 것이 예의다. 정황을 이해 못할 사람들도 아닌데 몰아붙이기식 발언으로 상대의 자존감마저 무너뜨린다면 분명 큰 실언이다. 시쳇말로 공개적으로 ‘쪽 팔리게’ 해서 몰아내는 꼴이다. 예우 없는 인사에 악감정이 남은 전 정부의 인사들에게 현 정부가 고울 리 없다. 적이 된다. 결코 도움이 못 된다.
법은 그렇다 치자. 더 중요한 것은 인물의 됨됨이, 사업의 영속성이다. 전 정부의 실책에 분노하고 ‘바꿔보자’는 의지로 국민은 CEO 대통령을 선택했다. 또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정권 인사를 단행하는 것도 이해한다. 하지만 ‘코드 인사’를 내걸어 무조건 ‘한풀이 인사’를 요구한 것은 아니다. 국민은 실용 정부를 선택한 것이지 구원을 풀어달라 호소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전 정권에서 ‘코드 인사’가 판친 것은 사실이다. 많은 사람이 ‘코드’의 범주에 속하고 정권 교체 후 스스로 알아서 처신해야 할 사람들이다. 반면에 코드와는 무관하게 능력을 인정받아 실력을 발휘한 사람도 많다. 그들이 ‘코드’의 족쇄에 함께 묶여 처리된다면 문제다. 수십년 공무원 생활 이후 기관장으로 전문적 역량을 펼치는 이에게 느닷없이 ‘코드’를 들이댄다면 황당할 뿐이다. 그들은 정부에 충실했을 뿐, 노무현 정권와 이명박 정권을 가리지 않았다. 그저 관운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소신을 가진 전문가마저 이전 정부의 ‘코드’로 굴비 엮듯 묶는다면 실용정부의 인사는 ‘잘못 끼운 단추’다.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며 스스로 공무원이기를 포기한 사람도 있다. 반면에 상당수 공무원은 국가에 대한 ‘영혼’이 투철하다. 무더기로 두부 자르듯 나눈다 해도 최소한 전문가의 ‘교집합’은 살려두어야 한다. 그것이 후에 ‘개혁 피로증’을 덜어 줄 수 있는 청량제가 되기 때문이다. 생각의 접점을 바꾸면 언제나 국민을 위한 사람, 전문가가 될 수 있다. 사람에 대한 정권의 영원한 소유권은 없다. 실용을 위해 끌어 안아야 한다면 과감할 필요도 있다.
큰물은 서서히 흐른다. 아무리 많은 비가 와도 모두 수용한다. 급작스러운 범람으로 해를 끼치는 경우가 없다. 가져갈 것은 가져가고 남길 것은 남긴다. 주변 땅을 기름지게 하고 풍요로운 열매를 선사한다. 그래서 큰 강 옆에서 문명이 자라고 경제가 큰다. 큰 강을 두고 ‘젖줄’이라고 하는 것은 어머니만큼의 따뜻하고 큰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경우 국제부장@전자신문, kw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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