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기술을 둘러싼 주도권 다툼에서는 표준이 매우 중요하다. 아무리 우수한 기술이라 하더라도 표준으로 채택되지 못하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가 기술을 선도하고 있는 와이브로는 수많은 난관을 극복하고 지난해 3세대 이동통신 국제표준의 하나로 채택됐다. 국제표준 채택 과정은 하나의 전쟁터와 같았다. 그럼에도 글로벌 로밍을 위한 공통 주파수까지 확보했다.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로 원천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기반으로 상용화에 성공한 이후 짧은 기간 동안 많은 성과를 이뤄냈다.
미국 시장조사 기관인 ABI리서치가 최근 실시한 조사에서 삼성전자의 모바일 와이맥스가 미국의 벤더 매트릭스 평가에서 1위에 올랐다. 특히 올해 들어서는 우리 기업들의 와이브로 장비 수출 소식도 계속 들려온다. 삼성전자가 미국에 이어 일본에도 장비를 공급하기로 했고 포스데이타도 싱가포르와 멀리 남미 베네수엘라에까지 장비를 공급한다.
삼성에 이어 포스데이타도 장비 수출에 본격 가세함으로써 와이브로가 국가 차원의 수출 품목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듯하다. 우리나라가 핵심기술을 가지고 전 세계를 선도하는 첫 사례다. 많은 우려를 딛고 해외 시장을 확보했다는 점은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TRI에서 근무할 당시 와이브로 원천기술 개발과 상용화를 위해 노력해온 사람으로서 크게 보람을 느끼는 부분이다.
와이브로는 올해부터 본격적인 시장이 형성될 전망이다. 미국에 이어 일본도 지난 연말 사업자를 선정해 내년 서비스를 목표로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고, 싱가포르·말레이시아·대만·태국 등 동남아시아 국가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모바일 브로드밴드 서비스를 위해 이들 국가가 와이브로를 채택한 것은 관련 기술의 세계 시장 확산에 기폭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와이브로는 이제 단순한 국내 기술이 아닌 세계 이동통신의 패러다임을 바꿀 지구촌의 기술로 우뚝 섰다. 이제 남은 과제는 우리 기업이 앞으로 이러한 호기를 활용해 향후 통신장비 시장에서 어떻게 주도권을 잡아나가고 얼마만큼 수익을 창출할 것인지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국내 시장이 활성화돼 해외 진출에 힘을 실어주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해외에서 우리 기업 간의 협력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와이브로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핵심기술을 우리 기업이 가지고 있으며 기술수준도 가장 앞서 있다. 글로벌 통신기업이 제품을 개발하고 있으나 아직은 우리와 기술격차를 보이고 있다. 당분간은 해외 시장에서 기술력이 앞서 있는 우리 기업 간의 경쟁이 될 소지가 크다. 우리끼리 잘만 협력하면 시장을 우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끌고 갈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할 때에는 땀 흘려 개발한 기술을 제값을 받지도 못한 채 시간을 낭비하고, 도리어 해외기업에 역전당하는 빌미를 줄 것으로 우려된다.
최근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는 한국 기업의 아성을 무너뜨리려고 일본 경쟁업체가 공동 기술 개발 전략을 펼치고 있다. 통신장비 시장에서도 그동안 시장을 호령해온 글로벌 기업이 속속 협력관계를 맺고 있다. 경쟁국들이 이럴진대 적어도 와이브로 분야에서는 우리나라 기업끼리 지나친 경쟁을 하기보다는 필요할 때 흔쾌히 협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국내에서 와이브로 운용 경험이 있는 서비스 업체와 공동으로 해외 시장에 진출한다면 더욱 바람직한 방향이 아닐까.
1980년대에 국내에서 개발된 TDX 전자교환기가 해외시장에서 국내 기업끼리 너무 심한 경쟁을 하느라 제살 깎아먹는 일이 생겨 공동협의체를 구성, 운영했던 일이 있었다. 어느 국가에 국내 기업이 미리 진출하게 되면 다른 기업이 추가로 진출하지 않기로 하는 등 신사협정을 맺기도 한 것으로 기억난다.
요즘은 개방된 환경으로 변했기 때문에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는 무리가 있겠지만 공정 경쟁의 큰 테두리 안에서 현명한 방법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우리 기업들끼리 누가 하나를 더 얻으면 다른 누군가가 하나를 잃어야 하는 ‘제로섬’ 경쟁보다는 선의의 경쟁과 협력으로 파이를 더 키워 공생할 수 있는 모델을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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