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리포트]해외 진출은 `창업`이다

  실리콘밸리엔 세 종류의 한국계 회사가 있다.

첫 번째는 한국 본사가 만든 제품 또는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연락 사무실이나 지사를 설립하는 사례다. 본사 임원이나 주재원을 파견, 미국 내 사업을 추진한다.

두 번째는 미국에서 공부했거나 직장을 다닌 한인들이 주축이 돼 회사를 설립, 벤처를 하는 종류다. 세 번째는 핵심 투자자 또는 핵심 임원 중에 한국인이 있을 뿐 얼핏 봐서는 보통 미국 회사 같은 것이다.

대기업 혹은 자체 브랜드를 갖고, 한국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거나 나름대로 역량이 있다고 하는 회사들이 첫 번째 모델을 선택한다. 상당한 자본과 인력을 한국에서 공수하고, 지사 운영에 본사가 깊숙이 관여하게 된다.

한국 벤처 중에선 한국말이 통한다는 이점 때문에 두 번째 형태의 한국 회사와 제휴하는 사례도 많다. 현지 교포 중심의 회사와 의기투합하는 이 모델은 시장 모색을 위해 파트너십을 맺기는 하지만, 여전히 ‘남남’ 관계라는 점에 주목된다. 이 때문에 성공 시에는 이익분배의 문제로, 실패 시에는 책임소재와 의견차이의 문제 등으로 결국 갈라서는 등 단기적 관계로 끝나는 일이 많다.

실제로 경쟁력 있는 이민 1.5세, 2세들은 한국업체와 손을 잡지 않고도 두각을 나타내고 성공하는 사례가 많다.

해외 진출을 위해 세 번째 기업과 손을 잡는 사례를 보자. 활용할 만한 인프라를 갖춘 미국 회사에 전략적으로 접근해 제휴하고, 현지 경영이나 브랜드 구축보다는 실질적인 매출 신장에 중점을 두는 공급 판매자 관계에서 시작되는 상황이 많다. 좀 더 깊은 관계 유지를 위해 일부 자본 참여를 하거나 독점권을 주는 전략적 제휴 형태로 발전하게 된다.

어느 방법이 가장 성공적일까. 한국과는 전혀 다른 언어·문화·인종이 펼쳐지는 해외에 지사를 설립하고, 믿을 수 있는 본사 직원을 파견해서 처음부터 시작하게끔 하는 교과서적 접근방법은 제대로 먹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경을 넘어서는 순간 한국에서 해온 방식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매우 제한적이다. 하나씩 배워가며 사업을 전개한다면 IT 사업에서 가장 핵심적인 가치인 ‘선점의 효과’를 누리지 못하게 된다. 한국에서 앞서 개발한 기술과 어렵게 만든 제품이 프리미엄을 받아 유통되지 못하고, 심지어 창고에서 쌓여 있기만 한다고 생각해보라. 대부분 인프라 구축이라는 명분 아래 1∼2년을 소비하고 만다.

해외에 개설한 지사의 저조한 실적에 불신하는 본사의 조급한 마음과 하루하루 적은 자본과 인력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발만 구르는 지사의 관계는 우수한 인재의 유출과 적지 않은 자본의 소진으로 가는 일이 참 많다.

왜 외국에 지사를 설립하고 해외시장에 진출하고자 하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제품의 특성과 타깃 시장의 성격에 따라 예외는 있겠지만, 많이 팔고 이익을 많이 내 회사의 가치를 높이고자 하는 것이다. 경험 없는 직원을 공부시키자는 것도 아니고, 수업료 낼 각오로 한번 부딪쳐 보자의 주먹구구식으로 해서는 안 될 사안이다.

해외에 지사를 냈다는 모양새를 생각하지 말고, ‘이익 창출을 위한 모든 가능한 방법’을 짜내야 한다. 이렇게 마음을 먹으면, 포기하거나 희생해야 할 선택 목록이 나온다. 회사의 약점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자신이 없다면,

낯선 외국에서도 충분히 잘할 자신이 있다면, 한국에서 그러했듯이 ‘창업’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한국 본사의 든든한 ‘빽’을 믿지 말고, 자생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로 현지에서 제2의 창업을 해야 할 것이다. 사람·자본·기술·타이밍 등을 현지의 시장에서 체크해야 한다.

참을 인(忍) 3개면 살인을 면한다는 말을 벤처기업에 적용한다면, (기회가 올 때까지) 참고 기다리고, (펀딩 받을 때까지) 참고 버텨야 하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 참고 격려해야 할 것이다. 조급한 해외 지사설립과 자신만만한 ‘돌격 앞으로’를 자제하고 현지에서 제2의 창업을 한다고 각오한다면, 꿈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기적은 절대 없다. 준비된 그릇만큼만 성공한다.

송영길 young@ncomputing.com, 필자는 현재 버추얼컴퓨팅 장치를 개발하는 벤처회사인 엔컴퓨팅의 창업자이자 사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실리콘밸리 K그룹의 고문으로 활동 중이다.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