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규제 경쟁의 덫

 경쟁은 어떤 형태든 경쟁 주체 간 상호 발전을 이끄는 사례가 많다. 개인이나 기업, 아니면 산업 자체도 경쟁의 행태를 띠는 것은 선의의 결과를 가져오는 수가 많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다.

 정부 부처도 마찬가지다. 부처 간 경쟁을 통해 정책의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시너지 효과 역시 기대 이상일 때가 많다. 하지만 같은 정부기관이지만 규제기관은 다르다. 규제기관 간 경쟁은 뜻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는 때가 많다. 더욱이 규제 영역을 놓고 벌이는 다툼은 더욱 그렇다.

 통신규제 영역을 놓고 벌이는 정통부와 공정위 간 규제권 다툼이 대표적이다. 공정위는 최근 SK텔레콤의 하나로텔레콤 인수 건과 관련, 800㎒ 대역 주파수를 로밍하도록 하고 주파수의 조기 회수·재배치를 권고했다. 실질적인 기업결합을 통한 시장 경쟁 제한성 문제보다 ‘월권’ 논란을 야기한 주파수 문제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공정위가 고도의 정치적 셈법을 끝낸 게 아니냐는 지적이 그래서 나왔다.

 정통부는 즉각 반응했다. 고유의 규제 권한을 넘보지 말라는 것이다. 정통부는 800㎒ 로밍을 인가조건에서 사실상 제외하고 주파수 회수·재배치도 정책 로드맵에 의거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다. 실제로 정책결정도 그렇게 내려졌다. 공정위의 권고조치는 물론이고 시정조치까지 무시한 셈이다.

 참으로 희한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나의 사안을 놓고 두 기관이 판이한 해석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공정위의 조치는 그래서 한 번 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공정위는 주파수의 독점이 ‘경쟁 제한 효과가 있다’면서도 사업자에 부여한 인가 조건은 ‘상품 동등 접근성 보장’과 몇 가지 이용자 보호 조건만 붙였다. 실제로 사업자에 더 타격이 될 만한 공동 유통망 활용 금지나 가격 할인 폭 제한, 시장 점유율 규제 등 당초 실무진이 검토한 것은 빠졌다.

 공정위의 ‘또 다른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소비자 권익과 이용자 차별 금지를 내세워 벌이는 헤게모니 싸움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통신시장은 컨버전스화하면서 더욱 커지고 있다. 통신만큼 광범위한 고객층을 갖고 있는 산업은 흔치 않다. 시장 경쟁 또한 치열하다. 국민 편익과도 직결된다.

 당연히 욕심이 날 수밖에 없다. 하나는 밀고 들어오려 하고 또 다른 하나는 수성해야 하는 처지다. 더구나 정권 교체기다. 밀고 들어오려 하는 시각에서 보면 호기가 아닐 수 없다.

 공정위의 이런 움직임은 처음이 아니란 점에서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지난 2005년에는 정통부 행정지도 논란을 불러일으킨 요금 담합 건으로, 지난해는 요금 인가제 폐지 건으로 붙은 바 있다. 심지어는 공정위·통신위 수장들까지 나서 통신시장의 관할 논쟁을 벌였다.

 당연히 죽어나는 것은 기업이다. 서로 다른 기관으로부터 규제를 받다 보니 동일한 사안을 놓고도 중복 규제를 받게 되는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기업으로선 억울하더라도 규제기관을 상대로 소송을 하기란 쉽지 않다.

 심지어 부처의 행정지도를 받아가며 한 사항까지도 규제의 대상으로 오른 적이 있다. 결국 KT 등 통신기업은 사상 최대의 과징금을 물어가며 행정소송을 벌였지만 여전히 규제의 칼날이 두렵기만 하다. 오죽하면 규제가 전가의 보도냐는 얘기까지 나왔겠는가.

 이쯤되면 규제의 유혹을 받을 만하다. 이중규제라는 지적을 받더라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분야로 영역을 넓힐 수 있는데다 규제기관의 위상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탈 규제의 시대다. 규제가 만능인 시대는 갔다. MB시대는 규제를 과감히 벗고 시장경쟁으로 산업을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잡아가고 있다. 시장 감시도 좋지만 규제를 위한 규제라면 다시 볼 때가 됐다. 그것이 규제기관 간 영역 경쟁에서 비롯된 이중규제라면 더욱 그렇다.

 박승정 u미디어부장@전자신문, sj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