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藥을 담는 사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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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정부조직 개편이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다. 개편의 핵인 방송통신위원회의 골간이 모습을 갖추어가고 있다. 교육부와 과학기술부의 통폐합도, 정보통신부의 해체도 사실상 결론났다. 금융과 제조, 서비스 산업 정책의 골간도 대부분 마무리됐다. 조각 인선도 매듭 지어지고 있다. 아직도 여야 간에 팽팽한 신경전이 펼쳐지고 있지만 다가오는 총선의 표와 정국의 기선을 잡기 위한 정략일 뿐 대세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다.

 정부조직개편이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두터운 관료층과 이들과 얽히고 섥힌 이해집단들의 결탁과 저항은 정권마저 위태롭게 하기에 충분하다. 중세 왕조시대에도 역성 혁명이나 반정이 성공했을 때에나 가능했을 정도다.

우리도 충분히 목도했다. 모두들 국가의 미래나 차기 정부의 국정비전은 안중에도 없었다. 오직 내가, 우리가 어떻게 되는지만이 중요했다. 공무원은 자리에 연연해서, 업계는 이해득실 때문에 온갖 승강이를 벌였다. 물론 인수위의 어설픈 설계도 한 몫했다. 총론은 그럴싸했지만 각론은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주고받기식 뒷거래까지 횡횡했다. 그래도 인정할 건 인정하자. 아쉬운 점이 없는 건 아니지만 절대 왕정도 해내기 어려운 일을 해냈다. 선거혁명으로 집권했던 참여정부도 실패했던 일이다. 국정 구상을 그르칠 정도가 아닌 만큼은 해냈다.

 어느덧 이명박 정부 출범도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개편된 조직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는 논의조차 못하고 말았다. 정부조직개편 협상에 나선 여야는 국가의 미래를 책임지는 신산업·신성장 주관 부처의 역할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없어 보인다. 여야는 물론이고 새정부 사람들조차 모두 이른바 표밭이 되는 부처의 존폐에만 관심을 가질 뿐이다. 국가의 미래보다 표밭이 더 중요하기 때문일까. 애초 지녔던 조직개편의 진정성이 슬슬 의심스러워진다.

 가장 걱정되는 것은 공무원들이다. 조직의 틀이 바뀐다고 생각까지 바뀌는 건 아니다. 한 조직에 몸담게 된 배다른 공무원들 사이의 갈등과 알력은 불가피하다. 조직개편의 명분인 작은 정부를 곧이 곧대로 믿는 이도 많지 않다. 조직 수가 준다고 조직원 수까지 저절로 줄어들지는 않는다. 게다가 세상의 모든 조직은 생물체와 같다. 확대 재생산이 본능이다. 머지않아 개편된 정부 조직 간에도 덩치 불리기와 중복과 마찰이라는 병폐가 다시 되풀이될 것이라는 말까지 서슴지 않는다. 조직원 관리가 정책을 마련하고 집행하는 일보다 더 시급한 과제다. GE는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초일류기업으로 군림하고 있다. 수많은 외부 조직을 통합하고 또 내부 조직을 떼어내면서도 경쟁력을 키워왔다. 그 비결은 조직문화였다. GE 경영진이 가장 심혈을 기울인 부분은 직원들의 의식을 혁신시키고 창의적 문화를 가꾸는 것이었다. 어렵사리 정부조직을 개편해낸 이명박 정부 사람들이 반드시 아로새겨야 할 대목이다.

 이번 정부조직개편은 적지 않은 희생과 모험을 담보로 했다. 신성장 산업의 컨트롤타워인 정통부와 과기부를 해체한 것이 그중 첫 번째다. 신성장동력의 역할은 방통위와 지식경제부 그리고 문화부가 떠안게 됐다. 이들 부처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면 큰 일이다. 우리는 제3의 정보화혁명에 일찍이 동참, 어렵사리 제2 산업혁명에서 뒤처진 골을 메웠다. 잘못하면 제4의 융복합 물결에서 뒤처지게 된다. 국민소득 4만달러의 꿈은 영영 멀어질 수도 있다.

같은 사발이지만 약을 담느냐, 독을 담느냐에 따라 용도와 결과는 완전히 달라진다. 지금부터라도 국가의 미래를 위해 새 정부조직의 역할을 보다 면밀하게 검증하고 대책도 세워야 한다.

 유성호 정보통신담당 부국장@전자신문, shy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