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택칼럼]산하기관·협단체를 어찌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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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자부나 문화부 전화를 받으면 눈앞이 캄캄합니다. 아비 없는 자식 신세가 이런 걸까요.” “자존심이 상하지만 솔직히 닥쳐올 인사태풍에 잠이 오질 않아요.” “힘이 없기 때문이죠. IT사람들도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해요. 4월 총선에서는 비례대표에 IT 인사들 몇 명은 넣어야 한다고 압력 행사합시다.” 정통부 산하기관 직원들과 우연한 술자리를 가졌다. 그들의 표정은 쓴 소주를 삼키는 것보다 더 우울하고 초라해 보였다. 축 처진 어깨에 신세한탄이 줄을 이었다. 얼마 전까지의 생기와 패기, 도전의식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술이 몇 순배 돌고나니 저마다 ‘현실’을 이야기했다. 평생을 바친 조직이 어디로 갈지조차 모르는 상황이다. 그들 화제의 종착역은 ‘생존’이었다. 뻔히 보이는 ‘구조조정 쓰나미’ 앞에서 ‘자리’를 지키고 싶어했다.

 과기부와 정통부가 해체된다. 통합신당조차 통일부·해수부·여성부 존치에 최선을 다한다. 과기부·정통부에 대한 관심은 어디에도 없다. 답답한 심정에 반대여론 내놓다가 ‘구시대적 조직보위 투쟁’으로 몰려 눈총과 미움만 샀다. 과기부는 그나마 부처 이름에 한자락 걸치기라도 했다. 공무원들은 제 살길 찾기 바쁘다. 정통부 인사 대부분은 ‘방송위행’을 희망한다. 업무의 연속성이나 뿌리 내리기에 유리하다. 하지만 본부 인원만 450명인데 그 절반 수준인 방송위로 대거 넘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산자부와 행자부로 이동하면 찬밥이다. 통폐합 대상 조직은 10∼20% 축소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그래도 당장의 끼니 걱정은 크지 않다. 인수위가 밝힌 것처럼 잉여인력은 재배치 및 교육을 통한 재취업이 예고돼 있다. 하루아침에 허허벌판으로 나앉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대다.

 산하기관 및 협·단체는 사정이 좀 다르다. 더욱 절박하다. 고된 ‘시집살이(?)’가 펼쳐질 것이다. ‘남의 집’에 몸을 의탁할 운명이다. 산자·문화·교육부가 점령군 행세야 못하겠지만 태풍은 피해갈 수 없다. 새 집에도 ‘자식’들이 많다. 엇비슷한 기능과 조직은 과감한 통폐합이 이루어질 것이다. 정부부처가 20%를 줄이는 판이다. 강도는 훨씬 높아질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살아남는다 해도 1∼2년이면 물갈이 된다. 구조조정의 칼날은 직원들을 겨냥하고 있다. 제아무리 합리적인 잣대를 들이대도 애꿎은 피해자는 나오게 마련이다. 게다가 산하기관, 협·단체의 주요 보직자는 이공계가 태반이다. 석·박사 학위를 소지하고 있는 고급두뇌가 대부분이다. 그들은 IT한국을 창조한 실무주역들이다. IT입국의 손발이었다. 관료들처럼 규제권 내세우는 파워도 없다. 기업에 군림하기보다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도우미 역할에 충실했다. 그런데도 정치세력 변동에 IT기관들이 직격탄을 맞게 될지 모른다. 정통부에만 정보사회진흥원·정보보호진흥원·정보통신산업협회 등 12개 법인(우정부문 제외)이 있다.

 방만하게 운영되거나 중복이 심각한 기관들은 차제에 걸러내야 한다. 효율성을 위해서라도 대대적인 개편을 단행해야 한다. 옥석 가리기, 새로운 도약 비전을 만들기 위해서는 수개월이 소요될 것이다. 그러나 불특정 다수에 대한 무차별적 감원 공포는 걷어내야 한다. 확고하면서도 정교한 플랜을 만들고 검증받아야 한다. 그날 헤어지면서 내뱉은 동석자의 마지막 말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그간 IT한국의 주역이란 달콤한 속삭임에 취했어요. 자리걱정에 벌벌 떠는 것이 현주소인데….”

  이 택 논설실장 etyt@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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