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영어는 `제2의 6.25`

　‘영어를 잘하는 나라가 부강한 나라.’

　이명박 당선인의 교육정책 첫머리는 영어 공교육의 강화다. 원어민교사를 채용하고 초·중등교사의 영어회화 훈련을 집중 강화한다. 이른바 ‘영어몰입교육’이다. 영어를 영어로 가르치는 것이다. 영어는 글로벌 경쟁사회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필수과목이다. 그래서 영어몰입교육은 CEO로서 이 당선인의 경험이 녹아있는 철학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학교에서의 영어교육은 무용지물이었다. 10년을 넘게 배워도 외국인에게 말 한마디 못한다. 공교육의 다른 과목은 국제적인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영어만큼은 바닥을 긴다. 공교육 중에서 유독 영어만큼은 경쟁력이 없다. 교과서가 너덜너덜해질 만큼 책장을 넘겼지만 그 결과는 아쉽게도 ‘가’ 수준이다. 언어교육의 가장 중요한 것이 ‘듣고 말하기’인데 한국의 영어교육은 ‘읽고 쓰는 데’ 급급했다.

　이 같은 영어교육의 후유증은 심각하게 나타났다. 직장인이 되어서도 ‘영어 스트레스’는 엄청나다. 승진의 필수요소이기 때문이다. 새벽과 오후 늦게 영어학원을 찾는 직장인이 부지기수다. 국내 굴지의 기업인 LG전자는 모든 임원회의를 영어로 진행한다. 남용 부회장부터 솔선수범하고 있다. 글로벌 경쟁에서 영어는 전쟁에서 개인화기와 같다는 논리다. 총없이 전쟁에 뛰어들어 살아남을 확률은 ‘제로(0)’다. 전쟁의 한 가운데 선 기업이야말로 영어의 중요성이 긴박한 상황이다. 술자리에서 만난 한 임원은 틈만나면 단어장을 훔쳐본다. “모두 영어로 대화하는데 뒤쳐지는 것 같아 불안하기 짝이 없다”는 하소연이다. 이 정도면 진짜 ‘서바이벌’하기 위한 영어다.

　폐해도 심각하다. ‘영혼이라도 팔아 취직하고 싶다’는 젊은이들에게도 영어는 필수다. 어학연수는 대학의 정규코스가 된지 이미 오래다. 영어 앞에선 전공도 차순위에 불과하다. 영어는 기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조기유학도 마찬가지다. 가장 큰 목적은 영어를 배우기 위해서다. 수학·사회·과학을 배우려고 조기유학의 보따리를 싸는 사람은 사실상 없다. 어린 나이에 좀더 원어민에 가까운 영어를 하고자 무리하게 유학을 간다. 대부분의 아버지들은 ‘기러기 아빠’라는 굴레를 쓰고 감당치 못할 고통을 치른다. 현실이다.

　그렇다면 영어로 인한 어학연수와 조기유학의 사회적 손실비용은 얼마나 될까. 계산한 바 없지만 물리적 비용 외에 정신적 고통까지 합친다면 가히 천문학적 숫자가 될 것이다. 단지 영어를 배우기 위해 그 많은 경제적 손실과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외로움을 견디다 못해 자살한 기러기 아빠의 기사를 보고 있노라면 ‘영어가 사람잡는다’는 말이 새삼 실감난다. 그 돈과 고통을 과학이나 인문사회학에 쏟았다면 우리나라는 이미 어느 한 분야에서 최고의 학문적 성과를 이룬 나라로 기록됐을 것이다.

　이 당선인의 ‘영어몰입교육’은 철저한 CEO적인 생각에서 나온 정책이다. 국가경제의 모듈인 기업이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인재 양성을 언제까지 외국의 교육으로 감당할 것인가에 대한 ‘근접한 답’이다. 물론 반대 논리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어 때문에 감당치 못할 외로움을 느껴야 하고 가정마저 깨지는 참사는 막아야 한다. 영어가 국부를 유출하고, 민족동란과 같이 이산가족을 양산하는 주체가 된다면 이보다 더한 대책이라도 세워야 하는 것 아닌가.

　이경우부장@전자신문, kw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