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선서 이야기

 “나는 일생을 의롭게 살며 간호사로서 최선을 다할 것을 하느님과 여러분 앞에 선서합니다. 인간의 생명에 해로운 일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지 않겠습니다.<중략> 개인이나 가족의 사정은 비밀로 하겠습니다.<중략> 간호를 받는 사람들의 안녕을 위하여 헌신하겠습니다.”

 나이팅게일 선서다. 선서에는 ‘갑을 관계’가 명확하다. ‘갑’은 환자고 ‘을’은 간호사다. 약자인 환자를 ‘갑’으로 받드는 나이팅게일의 진심이 느껴진다. 그래서 감동이 크다. 나이팅게일은 간호사인 자신을 앞세우지 않았다. 선서문에는 가장 낮은 자세로 섬기는 나이팅게일이 있다. ‘의롭게 살겠다는, 인간의 생명에 해로운 일을 어떤 상황에서도 하지 않겠다는, 남의 사사로운 일을 비밀로 한다는, 의사와 협조한다는’ 나이팅게일만의 고집이 아름답다. 간호사의 역할과 소명의식, 비장감이 들어 있다. 선서 중 단연 으뜸이다. 의사의 다짐을 담은 히포크라테스 선서도 좋지만, 나이팅게일 선서만큼 감동을 주지 못한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하여 노력하며, 국가이익을 우선으로 하여 국회의원의 직무를 양심에 따라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이건 국회의원 선서다. 짧은 문장 속에 함축적 의미를 담고 있다. 어디에도 감동이 없다. ‘엄숙히 선서’라고 외치지만, 비장감도 없다. 겸손함은 더욱 없다. 본인의 행동에 따라 나라를 살릴 수 있다는 가진 자의 협박처럼 느껴진다. 군림하는 선서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대통령 취임 선서문도 국회의원의 그것과 비슷하다. 짧은 것으로 치자면 단연 으뜸이다. ‘그놈의’ 헌법을 준수하겠다는 다짐은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이나 매한가지다.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는 문구도 변함없다. 선전포고문처럼 권위주의적이다. ‘국민 앞에’라고 외치지만, ‘갑’인 국민은 뜻을 알 수 없다.

 헌법을 들여다봤다. 헌법에 나온 대통령의 의무는 ‘국가독립, 영토보전의 의무’ ‘국가의 계속성과 헌법수호의 의무’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해 성실히 노력할 의무’ ‘취임 선서문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의무’다. 대통령 취임선서문에 이 내용이 모두 담겨 있다. 이쯤 되면 선서문을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 안 보고도 알 만하다. 헌법에 나온 대통령의 의무를 나열하다 보니, 선서문구가 헌법재판소 판결문 같다. 법 아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 다 이렇다. 대통령으로서의 의무와 책임, 대상자까지 담았지만, 멋은 없다. 당사자 대통령의 속내가 담겨 있지 않아서 정작 진정성마저 의심스럽다.

 선서는 여러 사람 앞에서 자신의 다짐과 맹세를 하는 행위다. 대통령의 통치철학이 다르듯, 국민 앞에 선 대통령의 마음가짐은 저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국민 앞에서 하는 선서도 달라져야 마땅하다. 신임 대통령 선서, 이건 어떨까.

“저는 5년 동안 747 공약을 반드시 지켜 300만개의 일자리를 만들고, 줄풀세를 통해 국민 허리띠를 풀어드릴 것을 국민 앞에 선서합니다.”

 김상룡 경제과학부 차장@전자신문, sr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