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2008년 1월 삼청동 풍경

 행운이라고 했다. 떠나는 정권과 들어오는 정권을 한 장소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기자로서 큰 행운이라고 했다. 삼청동 설렁탕집에서 오후 네 시 늦은 점심 시간, 이제 머리가 하얗게 센 모 신문사 정치부 선배는 후배에게 말했다. “5년 만에 한 번씩 혁명이 일어나는데, 하물며 ‘좌파 정권’에서 ‘우파 정권’으로 바뀌는 것은 그야말로 대혁명이다. 사람과 생각·문화·국가시스템이 바뀐다. 이게 혁명이 아니고 무엇인가.”

 정치부에서 잔뼈가 굵은 선배 시각에서야, ‘행운’이고 ‘혁명의 현장’을 취재하는 느낌이겠지만 전자정보통신·과학기술·경제 분야에서 굴러먹던 기자 입장에서는 행운이라 말하기에는 뒤끝이 쓰다. 정치학 강의를 한 선배에게는 미안하지만 ‘전문기자’ 꼬리표를 달고 있는 후배는 조직과 사람이 변하는 것이 흥미로울 수만은 없다. 바뀌고 변하는 데는 피와 눈물이 배어나오게 마련이다. 5년마다 한 번씩 대통령 선거를 치르고 새 사람이 들어와 새 정책을 만들었다. 이를 되풀이해왔다. 교육이, 과학기술이, 경제정책이 그랬다. 전문가 집단, 테크노크라트는 매번 10년 이상 지속할 이상적인 정책을 꿈꿨다. 그러나 변하지 않고 남은 것은 국민밖에 없다.

 대한민국 삼청동에는 청와대가 있고, 인수위가 있다. 하나는 떠나갈 사람이 머무르는 자리고 하나는 들어올 사람이 모여 준비하는 자리다. 인수위가 꾸려진 이후 낮에는 인수위 사람을, 밤에는 청와대 사람을 만났다. 삼청동 근처에 숨은 맛집이 꽤 많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그 덕분이다. 낮에 만난 사람은 웃었고 밤에 만난 사람은 울었다. 대선 이후 노무현 대통령 스스로 말했듯이 ‘좌파정부’ 사람은 공허해 했다. 코드가 같았고 열정이 뜨거웠던 ‘착하디 착한 왼쪽 가슴’을 가진 사람들은 우울증에 걸릴 만큼 청와대에서의 마지막 겨울을 맞고 있다. 어떤 사람은 여행하러 다니고 취미생활을 찾았다. 일부 사람은 봉하마을로 총선 준비로 다시 대학강단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낮에 만난 사람은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소신이 뚜렷했고 목소리에 자신감이 넘쳤다. 한결같이 바빴다. 음식점에서 만난 파란색 끈으로 묶은 인수위 신분증을 가진 사람은 서둘러 국밥을 먹었다. 식사시간도 때가 없었고 대부분 20분 안에 끝났다.

 1월 대한민국 권력은 삼청동에 집중됐다. 삼청동에서는 ‘점령군’ ‘반성문’ ‘거들먹’ ‘부처이기주의’ ‘로비’라는 험한 단어가 튀어나왔다. 떠나야 할 사람과 남아있을 사람 사이에서 오고 간 대화였다. 눈길에 난 앞사람의 발자국을 헤집지 않고 걸어야 하는 뒷사람의 섬기는 자세, 따라올 뒷사람을 걱정하며 바른 발자국을 내야 하는 앞사람의 겸허한 자세와는 거리가 멀었다. 2008년 1월 삼청동에는 권력 있는 사람이 넘쳤고 말이 넘쳤다.

 언젠가 대통령 선거를 혁명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선거가 끝나면 정권을 창출한 실세가 등장하고 이를 중심으로 새로운 권력지도가 만들어진다. 한 사회를 지탱하던 경제·정치 파워엘리트들이 썰물과 밀물처럼 오간다. 밀물과 썰물이 하루를 두고 교차하듯, 정권도 교차한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게 있다.

 “삼청동에서의 5년은 결코 길지 않다.”

 김상룡기자@전자신문, sr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