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국제연합) 회원국은 192개국이다. 최대 규모 국제기구다. 다음은 191개국이 참가하고 있는 ITU(국제전기통신연합)다. 우리가 잘 아는 WTO(세계무역기구)는 150개 국가가 가입했다.
ITU는 지구촌 IT UN이다. IT 관련 세계질서를 조율하고 국제 표준을 제정한다. 전기통신에 관련된 모든 주파수를 통제·배분하는 곳이기도 하다. 열강의 숨가쁜 IT 외교력이 맞서는 무대다. 일상의 직접적 영향력은 UN보다 오히려 크다. 정치적 군사적 분쟁 조정에 비해 ’먹거리’를 의존하는 곳이다. 우리 기업들이 수천억원씩 쏟아붓고 개발한 기술이 ITU 표준에서 외면당하면 당장 기업인들이 길거리로 내몰린다. ITU는 ‘2008년 세계의 현실’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IT업계가 부글부글이다. 주무부처인 정보통신부 통폐합 문제로 시끄럽다. 관련 협·단체와 기업인·전문가들은 공개적으로 반대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이쯤 되자 인수위가 ‘일부 부처의 로비’에 경고성 발언까지 했다. 예견된 상황에서 선제적 방어나 전략적 이슈 선점에 실패한 정통부도 별 할 말이 없어 보인다.
로비라고 규정할 수도 있다. 밥그릇 싸움으로 비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이 나서는 이유’만은 헤아려 봐야 한다. 기업인과 전문가 집단은 정통부를 지키는 ‘라이언 일병’이 아니다. 새 정부의 판단에 따라 부처는 개편하면 된다. 어떤 변화이건 규제받고 산업 진흥 대상이 되는 것은 똑같다. 정통부면 어떻고 산자부나 청와대면 또 어떻겠는가. 정부와 기업·전문가집단 간 역할이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들’이 진정 우려하는 것은 새 정부의 철학과 의지다. IT는 지난 반세기 동안 성장 한국의 엔진이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캐치프레이즈인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가 더욱 큰 원인이기도 하다. 국정의 맨 앞머리에 IT를 두고 다시 한번 비약해보자는 염원이 있다. 하지만 일련의 흐름은 실망 분위기가 지배한다. IT 기업인들은 불안해 했다. 당선인과 신권력 실세들의 IT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염려도 있었다. 전문 분야인 IT쪽 의견을 전달하고 국정 틀 속에 꿰맞출 인사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국정 운영은 어차피 선택과 집중이다. 한정된 역량을 우선 순위에 따라 배분·투입한다. 이 때문에 정권 교체기만 되면 IT에도 눈길을 달라는 주문이 반복됐다. 청와대 IT수석 신설 요구는 업계의 상징적 단골 메뉴였다. IT업계는 정부 조직개편의 이면을 읽어 왔다. 정부의 IT에 대한 철학과 의지가 드러난다고 경험적으로 느낀다. 그래서 ‘그들’은 정부개편을 통해 새 정부의 한자락을 읽어내려 한다. 결과는 ‘우려’의 목소리였다. IT의 후퇴를 예감하고 있는 것이다.
IT는 우리 수출의 35%를 차지한다. 한 해 흑자만 600억달러가 넘는다. 한국 전체의 무역흑자보다 훨씬 크다. 북핵 6자회담만큼 ITU에서의 기술 외교가 중요한 세상이다. IT인들은 정통부가 아닌 나라를 구하는 라이언 일병이 되고 싶어 한다. 그것이 ‘그들’의 진정성이다. 나머지는 새 정부의 몫이다. 철 지난 미국 대선 용어 같은 “문제는 IT야, 바보야”라는 소리가 2008년 한국에서 들려서는 곤란하다.
이 택 논설실장 etyt@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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