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 논의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과거에 무차별적인 침해행위를 단속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면 이제는 저작권 보호를 위한 꾸준한 교육과 공정이용 장려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저작권위원회는 ‘저작권은 건전 사회의 형성과 사회의 합리적 운영과 발전에 필수 불가결한 요소’라고 정의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일반인에게 저작권은 특수 계층이나 집단의 권리라는 이미지가 강한 것이 현실이다.
문화관광부는 사용자제작콘텐츠(UCC)·블로그의 확산으로 누구나 창작물을 생산하는 저작권자면서 이용자가 되는 현실을 주목해 올바른 저작권 이용문화 형성을 위한 교육과 공정이용 장려에 나설 계획이다.
◇저작권 “교육 결실 더 키운다”=문화부는 저작권과 관련한 핵심과제의 하나로 교육기능의 강화를 꼽았다. P2P나 웹하드에 타인의 저작물을 올렸다가 저작권 침해로 처벌을 받는 이의 대다수가 “저작권 보호가 뭔지 잘 몰라서 저지른 실수”라고 전했다. 이는 최소한 저작권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침해를 줄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저작권 체험학교를 수행한 교사 김성훈씨는 “교육 이후 아이들이 현장학습을 가는 버스에서 비디오를 틀면 저작권 위반이라는 말을 하는 등 미처 생각하지도 못한 곳에서 변화가 발생한다”고 학습효과를 설명했다.
저작권위원회는 초·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저작권 교육이 인식 제고 효과가 크고 실생활에서 반영이 잘된다는 점에서 새해에는 학교로 저작권 교육을 확대할 방침이다. 우선 저작권 교육 연수를 받는 교사 수를 1200명에서 3200명으로 늘리고 수도권에만 국한된 저작권 체험학교·연수학교를 전국으로 넓힌다.
◇공정이용 도모 위한 시스템 구축=노태섭 저작권위원장은 “태양 아래 새것은 없다”며 “저작물이 흐르고 유통돼 새로운 창작의 원천이 되게 하는 것이 저작권의 근본적인 취지”라고 설명했다.
저작권자의 권리를 철저하게 보호하는 한편, 이용허락이 된 저작물을 창작에 활용하는 과정은 손쉽게 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새해에는 디지털 저작권 거래소를 시범적으로 운영하고 저작권 자유이용사이트를 활성화할 계획이다.
디지털 저작권 거래소는 저작물의 증권 거래소에 해당되는 곳으로 음악·영상·어문 등 각기 다른 분야의 저작권 거래 정보를 관리하는 곳이다. 주요 기능은 △저작권 정보 관리 △불법콘텐츠 유통 관리 △자유이용 저작권 정보 관리 등 5가지 정보관리와 콜센터 운영이다.
신은향 문화부 저작권산업팀 서기관은 “디지털 저작권 거래소는 세계 최초로 이뤄지는 시도로 안정적으로 구축되면 해외 수출 모델도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유이용사이트는 저작재산권 보호기간이 만료된 저작물·저작권자가 사회에 기증한 저작물 등 자유로운 이용이 가능한 저작물의 정보를 제공해 공정한 이용을 도모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침해 단속 “체계적이고 엄격하게”=문화부는 “저작권 교육 강화와 공정이용 활성화가 불법을 수수방관하겠다는 뜻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김정배 문화부 저작권정책팀장은 “새해에는 불법 저작물 유통 근절을 위한 법적·제도적 단속이 체계적이고 강도 높게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P2P·웹하드·포털 등 저작물을 유통하는 온라인서비스사업자(OSP)의 저작권 보호 책임은 더욱 강화될 방침이다. 문화부는 올해 들어 38개 업체를 대상으로 모니터링을 실시한 결과 저작권 보호를 위한 기술적 조치를 이행하지 않은 31개 업체에 적게는 210만원에서 많게는 2500만원까지 과태료를 부과했다.
현재까지는 음악·영화 부문에 한해서 모니터링을 실시했으나 추후 방송영상물·출판저작물 영역까지도 포함할 계획이다. 저작권단체연합회 산하의 저작권보호센터의 불법 저작물 유통 감시 체계도 보완해 모니터링의 신뢰성도 높일 방안이다.
이 외에도 저작권법 133조 4항에 따라 저작권을 침해한 불법복제물이 저작권 이용질서를 심각하게 훼손한다고 판단되면 온라인서비스제공자(OSP)에게 이를 삭제 또는 중단하도록 조치도 지속한다.
실제로 문화부는 지난해 네이버·다음 등 주요 9개 포털사이트의 카페·클럽·블로그·미니홈피 등을 대상으로 저작권보호센터가 위임받은 음악 1만곡, 영화 1000편에 삭제·중단 명령권을 발동했다. 680여개의 카페와 블로그 등에서 유통되는 불법복제물은 삭제·중단토록 경고했으며 불법 저작물의 90% 이상이 삭제됐다.
◆발상 전환에 나선 콘텐츠 업계
콘텐츠 업계가 저작물 무단공유자들에게 무차별적 법적 대응을 자제하는 대신 이들을 꾸준히 계도하는 방향으로 발상을 전환했다. 대부분 청소년인 저작권 침해자들에 강력 대응하는 것이 일시적 효과만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부터다. ‘콘텐츠는 공짜’라는 사용자 인식을 바꾸는 데서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는다.
엠넷미디어는 지난해 말부터 자사 채널인 엠넷과 케이엠(KM)에서 두 시간마다 이효리·이민우·슈퍼주니어 등이 출연하는 불법 음원 근절 메시지 영상을 내보내 청소년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박경수 엠넷미디어 홍보팀장은 “방영 초기 시청자들이 생소하게 여겼지만 유명 스타들의 메시지에 10·20대가 집중하면서 효과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한국음원제작자협회·한국연예제작자협회·엠넷미디어가 지난해 12월 발족한 불법음원근절 국민운동본부도 원더걸스와 FT아일랜드·김조한·서인영 등 인기스타를 내세워 높은 관심을 끌었다.
영화계는 지난해 제12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그린 마인드 캠페인’을 펼쳐 1만여명의 영화인과 관객에게서 불법 다운로드 근절에 동참하는 서명을 받았다. 11월에는 대한극장에서 한국영화진흥위원회와 영화제작가협회가 공동으로 ‘영화 불법복제 방지를 위한 영화인 대회’를 열어 불법복제가 어떻게 우리 영화 산업을 망치는 지를 대중들에게 알리는 등 적극적인 계도활동을 펼치고 있다.
만화계는 우리만화연대·한국만화가협회·한국만화출판협회가 주축이 된 온라인만화저작권보호협의회가 3년 전부터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성과를 거둬왔다.
웹사이트(www.comicright.or.kr)에서 단속 및 저작권 보호활동을 하는 한편 서울문화사·학산문화사·대원씨아이 등 대형 출판사의 잡지와 단행본에 불법 스캔만화에 반대하는 릴레이 만화를 연재 중이다. 캐릭터페어와 같은 대형 행사에서는 만화 저작권 보호를 위한 캠페인을 펼쳐 참가 학생들의 관심을 끌었다.
곽현창 온라인만화저작권보호협의회 사무국장은 “지난해 캐릭터페어에서 캠페인을 진행한 후 단속·신고 건수가 10배 이상 느는 등 사용자 인식 재고에 확실한 효과를 봤다”며 “그간의 노력이 조금씩 성과를 거두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인터뷰-노태섭 저작권위원장
“저작권 교육 확대는 저작권 이용 활성화와 함께 새해 저작권 논의의 두 핵입니다.”
노태섭 저작권위원장(56)은 저작권 침해를 줄이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로 ‘교육’을 꼽았다. 그는 이를 위해 그동안 저작권 위원회가 진행해 온 저작권 교사 연수, 전문가 연수 등의 교육을 일반인 대상으로 확대할 것임을 밝혔다. 최근 저작권 만화를 제작해 초·중·고교에 배포하고 저작권 애니메이션을 제작한 이유도 자칫하면 딱딱하게 여겨질 수 있는 저작권 보호의 중요성과 산업적 효과 등을 쉽게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노 위원장은 “교육 범위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위원회 내부 인력만으로 부족하다”며 “전문강사 양성, 교사 연수 등을 통해 저작권 관련한 지식을 체계적으로 전달할 인력을 키우는 것도 위원회의 중요한 과제”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새해부터는 현재 수도권 학교를 중심으로 시행되고 있는 저작권 체험학교와 연구학교를 전국으로 확대하고 전문강사 양성제도 등이 도입된다. 지난 7일에는 방학 중인 교사를 대상으로 한 저작권 연수과정이 온오프라인에서 시작됐다.
그는 “저작권 교육을 지속적이고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정규교과과정에 저작권 관련 내용이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저작권 위원회는 8차 교육과정이 도입되는 내년에 정규교과과정에 저작권 항목을 넣기 위해 작업 중이다.
노 위원장은 저작권 보호의 중요성을 아는 것 이상으로 실생활에서 실천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청소년이 저작권을 침해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인터넷상에서 무의식적으로 타인의 저작물을 주고받는 것은 실천이 그만큼 어려움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노태섭 위원장은 “저작권 침해자가 초범이나 청소년이면 법무부와 협의해 선도조건부 기소유예 제도로 기회를 주는 것은 앎과 실천 사이의 간극을 줄이는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수운기자@전자신문, p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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