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시절, 달러를 들고오는 기업인들은 구세주 대우를 받았다. 돈의 성격은 ‘묻지마’였다. 한국 IT시장에 투자한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했다. 놀라운 것은 해당 기업이나 펀드의 책임자가 방한할 때였다. 이들은 곧바로 청와대로 직행했고 정부도 기꺼이 수용했다. 대통령은 사의를 표명했고 이튿날이면 언론이 외자유치 소식을 대서특필했다. 우리도 형편이 좀 나아졌다. 한숨 돌리자 따져보기 시작했다. 이들이 진정한 친구인지, 아니면 전형적 ‘먹튀’인지 서서히 실체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부는 거의 ‘사채업에 준하는 투기업자(?)’로 밝혀졌다. 3∼4년 만에 수천억원, 많게는 조가 넘는 액수를 걷어갔다. 세금도 없었다. 당연히 비판이 거셌다. 법률적 강제규정은 아니지만 한국의 ‘국민정서법’을 인정하고 ‘소액’의 사회공헌자금을 선심쓰듯 내놓고 철수한 자본도 있었다. 하나로텔레콤을 매각하는 뉴브리지-AIG에도 노조를 통해 얼마 전 비슷한 요구가 전달됐다.
무자년 벽두부터 이명박 정부 인수위의 행보가 급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 인수위의 요체는 경제살리기다. 핵심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 만들기’다. 규제 풀고 투자 촉진해 일자리 창출하면 된다는 명쾌한 논리다. 여기에 외자유치라는 대안도 동원됐다. 인수위에 별도 조직까지 갖추었다. 이명박 정부의 전략적 승부수로 볼 수 있다. 사정이 이쯤되면 정부부처마다 외자유치 대안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다. 관료들의 속성상 “연내에 적어도 몇 건을 성사시키겠다”는 장밋빛 청사진이 잇따를 전망이다. 가뜩이나 성과를 중시하는 것이 당선인의 스타일이다. 하지만 IT 분야에서는 옥석을 가려야 한다.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한 것이 있다. 투기자본·먹튀자본은 배제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다. 정부의 조급증과 과시적 성과주의가 되풀이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점이다. 참여정부는 IT 분야의 특수성을 이해하고 대규모 자본보다는 연구개발(R&D)센터 유치라는 진일보한 정책을 펼쳤다. 구글·MS·HP·오라클 등 초일류기업이 한국 센터 설립을 약속했다. 심지어 현금 인센티브 지원책까지 동원, 국내기업 역차별론이 불거질 정도였다. 그럼에도 결과는 별무성과다. 한국 정부의 요구에 외국기업이 성의 표시한 것과 다를 바 없다.
외자 유치에는 두 가지 전제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기업환경과 시장 요인이다. 이들 모두 우리는 중국에 한참 뒤져 있다. 글로벌기업이 중국에서는 대대적 투자에 나서면서도 한국을 외면하는 이유기도 하다. 규제는 살아있고 영어가 통하지 않으며 노동시장 경직돼 있는 판에 시장규모도 손바닥이다. 이 상황에서 투자를 감행할 기업은 거의 없다. 오히려 한국 정부의 다급함을 이용한 투기세력의 훌륭한 먹잇감으로 보일 뿐이다. 우리는 바뀐 것이 없는데 투자하라는 것은 ‘압력’ 아니면 ‘구걸’이다.
환경과 시장은 그대로인 채 실적에만 포커스를 두면 앞뒤가 뒤바뀐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외자유치 실적만이 최선이라는 도그마에 갇혀서는 곤란하다. 또 다른 시장의 ‘우상’ 도 피해가야 한다. 투기를 투자로 포장해서도 비판받는다. 그 과정에서 야기되는 한건주의·성과주의도 경계해야 한다. 과거 정부의 예는 타산지석이다. 국내에도 300조원이 넘는 돈이 갈 곳을 못찾고 떠돌고 있다.
이 택 etyt@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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