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아마 인류 최초의 표준은 몸짓과 소리였을 것이다. 사냥감을 찾거나 잡을 때 무리가 함께 움직이기 위해서는 일정한 약속이 필요하다. 몸짓과 소리에서 한 단계 발전한 표준이 말이다. 말이야말로 인류와 동물을 구분짓게 한 대발명품이다. 몸짓과 소리의 표준화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집단생활을 하는 동물에게도 있다. 전설로 남아 있는 바벨탑 이야기는 언어 표준화의 상징이다. 온 인류가 표준화된 단 하나의 언어로 소통했을 때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었는지를 말해준다.
말의 한계를 또 한 번 뛰어넘은 표준이 바로 글이다. 글의 발명은 인류문명을 선사시대와 유사시대로 구분짓는 혁명적 변화를 야기했다. 유사 이래 글을 가진 민족이나 국가는 타민족과 주변 국가를 지배하고 흡수해왔다. 표준의 확산이다. 지금도 지구촌에는 말은 있되 글은 없는 민족이 허다하다. 글을 만들어낸 선조를 가진 후손은 축복받은 존재다. 우리 민족은 글을 발명했으되 좀 늦었다. 중국이 동북공정으로 우리 선조의 땅을 자기네 것이라고 우기는 것도 글을 먼저 가졌기 때문이다.
기술 표준은 현대 인류의 공통 언어다. 말과 글은 통하지 않아도 무방하다. 누구가 쉽게 표준화된 문명의 이기를 이용할 수 있다. 누가 먼저 표준화를 시키느냐에 따라 시장을 지배하게 된다. 표준은 특허라는 지식재산권으로 보호까지 받는다. 이제는 말과 글이 아니라 기술 표준을 장악하는 쪽이 세상을 지배한다.
미국 캘리포니아 새너제이에서 열린 ‘로보디벨러프먼트 콘퍼런스’에서 로봇 기술 표준화가 거론되기 시작했다. 로봇의 궁극적인 모습은 말하고, 듣고, 보고, 쓰고, 느끼는 존재다. 만화영화의 주인공 우주소년 아톰처럼. 아톰은 프로그램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사람처럼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기뻐하고 슬퍼할 줄 안다. 로봇은 제2의 인류다.
그래서 로봇 기술 표준화는 여느 기술 표준화와는 다르다. 인류가 수만년 동안 진행해온 표준화의 결정판이다. 바벨탑을 무너뜨린 인류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다. 머지않아 세상의 모든 로봇이 동일한 기계 언어로 소통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하나 된 로봇의 바벨탑이 어디까지 미칠지 궁금해진다. 기계 언어는 서로 달라질 염려가 없어 로봇의 바벨탑이 무너질 염려가 없기 때문이다.
유성호팀장@전자신문, sh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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