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지의 라디오
김해수 지음, 김진주 엮음, 느린걸음 펴냄.
이 책은 국산 라디오 1호를 만들어 한국 전자산업의 새벽을 연 엔지니어 김해수씨(1923∼2005)의 일대기다. 이 일대기 속에는 엔지니어로서의 행적만이 아니라 장난꾸러기 어린 시절의 추억에서부터 해방과 전쟁을 전후한 격랑기의 인생 유전, 애틋한 연애담, 민주화의 격동기에 딸과 유별난 사위로 인해 겪는 고통과 갈등까지 개인적 삶의 다양한 모습도 함께 담겨 있다.
엔지니어 김해수씨는 큰 역사의 물줄기에서 보면 분명 ‘굵직한 인물’이라기보다는 평범한 인물 쪽에 더 가깝다. 그러나 여러 가지 상징적 의미가 교차하는 지점을 통과해야 했던 그의 삶 기록은 단지 흥미로운 개인의 기록에 머무르지 않는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일본에서 전기 기술을 배우고 좌우가 대립하는 해방 공간을 엔지니어로 통과하고 산업화 1세대로 ‘조국 근대화 역군’인 동시에 민주투사의 아버지로 살아야 했던 그의 기록 속에는 한국 현대사의 굴곡이 고스란히 스며 있다. 그의 기록은 한국사의 한 부분을 더욱 생생하게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1959년 첫 국산 라디오 개발 전후와 이제 막 걸음마를 떼던 한국 전자산업의 현장과 시장 현황을 그가 증언하는 장면이다. 그때까지 일본이나 미국에 종속되어 있던 기술의 독립 나아가 경제적 독립을 향한 고고성과도 같은 것이었고 산업화로 비약적 경제 발전의 시발점이기도 했다. 이후 김해수씨는 국산 TV·콘덴서·전자교환기 등 전자부품의 기술 개발 현장을 이끌었다.
오늘날 ‘IT 강국’이라는 한국의 위상은 바로 그 연장선 위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1만원.
김현민기자@전자신문, min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