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원로를 대접하는 문화

 인텔이 샌프란시스코 모스콘센터에서 개최한 인텔개발자회의(IDF) 무대에 나이 지긋해 보이는 한 노인이 느릿한 걸음으로 등장했다. 세계 반도체 시장 1위 기업인 인텔이 개최하는 행사에 여든에 가까워 보이는 노인이 특별 연사로 등장한 것은 흔치 않은 일.

 청중은 이 노인에게 의아한 표정 대신 우레와 같은 박수 갈채와 플래시 세례를 쏟아부었다. 이날 가장 주목받은 사람은 기조연설을 한 폴 오텔리니 인텔 사장 겸 최고경영자(CEO)였지만 가장 사랑받고 환영받은 사람은 이 노인, 고든 무어(78)였다. 무대에 가까운 앞자리는 물론이고 뒷자리에 있는 사람까지 수십명이 몰려나와 디지털 카메라나 카메라폰으로 이 노인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는 컴퓨터 칩의 평방인치당 트랜지스터의 수가 18개월마다 두 배로 증가한다는 무어의 법칙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잘 알려진대로 ‘무어의 법칙’은 그가 이름을 직접 지은 것은 아니다. 카버 미드 캘리포니아공과대학 교수가 무어의 이론에 이름을 붙인 것일 뿐이었다.

 무어 전 창업자는 ‘무어의 법칙’이 어느새 반도체 산업 전반을 아우르는 규칙이 돼 버리자 어쩔 수 없이 따라가게 됐다며, 인텔이 무어의 법칙을 잘 따라줘서 고마울 뿐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가장 믿지 못할 일이 무엇이었냐는 대담자의 질문에 그는 “요즘 반도체 웨이퍼의 크기가 12인치(약 300㎜)에 이르더라. 내가 반도체를 개발할 때 웨이퍼의 크기는 3인치(약 76㎜)에 불과했다. 웨이퍼의 크기가 이렇게 커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 말했다.

오텔리니를 비롯한 주요 임원진과 행사 참석자가 무어 공동창업자의 연설을 끝까지 경청하는 모습을 보면서 미국의 IT산업이 성장한 이면에는 산업 발전에 젊음을 걸었던 원로를 대접하는 문화도 적잖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샌프란시스코(미국)=정소영기자@전자신문, sy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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