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신문과 IT코리아]IT코리아 `숨은 일꾼` 자부

◆IT와 함께 한 25년

전자신문은 1982년 9월 22일 창간했다. 가정에 흑백TV 대신 컬러TV가 들어서고 국내 가전업체들이 해외 미개척지를 한곳 두곳 뚫는 데 성공했다는 낭보가 터졌던 바로 그 해다. 또 당시 정부가 ‘전자공업’을 차세대 먹거리산업으로 정하고 본격적인 육성에 나설 때다.

 전자신문은 창간이후 25년 동안 일반 국민이나 매체가 거의 관심을 갖지 않았던 전자·정보·통신 분야 국내외 신기술과 시장 동향·산업정보를 가장 먼저, 정확하게 알리는 것을 제1 사명으로 삼았다. 때로는 급격한 기술변화 속에서 기업들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심층 취재와 진지한 토론 등을 통해 제시했다. 이를 두고 윤동윤 전 체신부장관(현 IT리더스포럼 회장)은 지난 2002년 발간된 ‘전자신문 20년사’에서 “전자신문은 한국의 정보통신이 오늘날 세계적인 수준으로 발전하고 주목받게 된 성과에 대하여 정책부처와 관련산업계와 함께 그 공을 주장할 자격이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산고 끝에 태어난 ‘전자시보’=전자신문(창간 당시 전자시보) 창간은 ‘전자공업’을 이끄는 리더들의 뜻이 합치돼 이뤄낸 결과물이다. VCR·오디오 등 가전산업의 국산화가 속속 이뤄지면서 전자업계가 ‘우리도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붙던 시점이다. 이때 우리나라 전자산업이 지속 성장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전파신문’과 같은 전문 매체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그러나 1980년대 초는 신군부에 의해 ‘언론 통폐합’ 여파가 끊이질 않던 상황이어서 새 매체 창간이 여의치 않았다. 이때 창간 발행인인 김완희 박사(전 컬럼비아대 공과대학 주임교수)가 한국 전자산업의 무한한 가능성을 제시하며 ‘전자시보’의 역할론을 강조, 마침내 발행 허가를 받는데 성공한다.

 정부가 전자신문을 창간을 허가한 배경에는 당시 산업 분위기도 빼 놓을 수 없다. 1982년 제조업 분야에서 전자산업의 투자비중은 이미 두자릿수(12%)로 증가했으며 1984년에는 26%까지 급증했다. 과학기술부(당시 과학기술처)가 전자산업 장기 육성계획을 발표한 해도 바로 전자신문이 창간된 해이다. 창간호 발행소식에 바로 구독신청을 했다는 서화엔지니어링의 유재용 사장은 “당시 가전산업의 관심은 높았으나 정보를 구하는 것이 매우 힘들었다”면서 “전자신문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어 무척 반가웠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지속적 혁신 노력=전자신문은 창간호부터 파격의 연속이었다. 전문지 최초로 영문판 2개면을 동시 발행해 우리나라 전자산업현황을 외국에 소개하는 동시에 한국에 나와 있는 외국인들을 배려했다. 또 일본의 ‘전파신문’, 미국의 ‘일렉트로닉뉴스’ ‘컴퓨터월드’ 등 전문 언론과 제휴해 해외소식을 심도 있게 전했다. 우리나라는 이때 컴퓨터를 자체적으로 개발하는 데 성공하고 본격적인 상용화에 나설 시점이었다.

 1985년부터는 주 2회로 발행회수를 늘리면서 전문지로서는 드물게 사설면을 신설, 업계가 나아갈 방향을 선도하는 정론지로 거듭났다. 또 국내 최초로 ‘한국전자연감’을 발간하기 시작했고 정부가 ‘정보산업의 해’를 선포한 1987년에는 국내 최대 규모의 IT종합전시회 ‘한국컴퓨터·소프트웨어전시회(SEK)’을 창설,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일간화 성공 및 고속성장=1989년 창간 7주년을 맞은 전자신문은 독자들에게 보다 신속·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제호를 ‘전자시보’에서 ‘電子新聞’으로 전환하고 격일발행체제에 돌입했다. 1991년 4월 1일 부터 마침내 완전 일간체제(주 6회 발행)를 갖췄고 1996년에는 제호를 한글로 바꿨다. 20년 넘게 전자신문을 구독해온 신원컴서비스의 신승진 사장은 “전자신문을 통해 언제나 새로운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면서 “당시에는 그래야만(신문을 봐야만) 고객과 대화를 할 수 있다”고 회상했다.

 1993년에는 일간지 사상 최초의 IT활용 전문섹션 ‘정보생활’을 매주 금요일마다 발행해 국내 언론매체에 IT섹션 발간 붐을 일으켰고 역시 국내 최초의 CD롬 매거진인 ‘클릭’도 한국 언론사의 새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IT정책 ‘유비쿼터스 기반’으로 전환 제시=정책 부처와 산업계에 새로운 IT비전으로 ‘유비쿼터스’를 처음 제시한 것도 전자신문이다. 전자신문 2002년 4월 ‘21세기 아젠다, u코리아 비전’을 시작으로 올해 ‘IT유토피아 u시티를 현실로’에 이르기까지 만 5년이 넘게 유비쿼터스의 중요성과 세계 기술동향·파장 등을 연중기획물로 소개해 정부와 산업계가 IT정책과 기업 성장전략에 반영시켰다. 또한 사회 전반에 ‘유비쿼터스’ 인식을 급속도로 확산시키는 계기를 제공했다.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며=전자신문은 창간 25년을 맞아 새로운 25년의 도약을 준비중이다. IT가 하나의 산업·기술에 그치는게 아니라 생활 전반에 깊숙이 자리잡는 사회 전반의 흐름을 선도하기 위해서이다. 이제 이 지구상의 모든 사물과 현상에서 IT를 배제하고 논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 새로운 25년을 준비하는 전자신문의 어깨가 더욱 무거운 이유다.

 김준배기자@전자신문, joon@

 

◆전자신문 1면에는 어떤 뉴스가….

 전자신문은 언제나 IT업계와 함께했다. 신기술 개발·매출 급신장·해외시장 진출 성공 등 기쁜 소식에 대해서는 기사로 축하했으며 실적 저하·경기 침체 등 IT업계가 어려움에 빠졌을 때는 안타까워했다. 좋은 정책에 대해서는 박수를 아끼지 않았으며 실정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지적했다. 이는 창간호(1982년 9월 22일자)부터 1면 머리 기사를 보면 확인할 수 있다.

 창간사는 전자신문의 창간이 우리나라 IT산업(전자산업)의 잠재력을 일깨우기 위한 첫걸음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나아가 조병화 시인은 창간축시 ‘미지의 빛’에서 ‘전자를 아는 자만이 새시대에 살아남는다’며 우리나라가 장차 IT강국이 될 것임을 확신하고 있다.

 전자신문은 창간 초기 정부의 정책 방향 및 국내 기업들의 성과와 함께 해외 기술 및 동향에 대한 내용이 많았다. 업계가 해외 소식에 목말라 있었기 때문이다. 1982년 10월 6일자에는 ‘쫓기는 미국 전자기술’이라는 기사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을 보유한 미국이 한국을 비롯 일본·대만 등으로부터 기술추격을 받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1983년 5월(11일)과 11월(9일)에는 각각 ‘대미 전자수출에 암영-미국 상원서 관세인상 추진’과 ‘미국 FCC 주파수 규격따라 무선전화기 비상’ 등의 기사를 통해 우리 수출업체들에게 사전 대응을 당부했다.

 1980년대 중반부터는 한국의 우수한 기술력을 알리는 기사들이 자주 1면 머리를 장식했다. ‘256KD램 양산 돌입-삼성 반도체 6인치 웨이퍼 가공’(1985년 5월 29일자), ‘국산 전전자 교환기 첫 설치’(1985년 10월 10일), ‘국내 반도체 1MD램 시대로-삼성·금성반도체 시제품 생산’(1986년 12월 11일), ‘전자수출 대망의 100억달러 돌파’(1987년 11월 30일) 등이 그것이다.

 일간화한 1991년 이후에는 보다 다양한 기사를 소화해낸다. ‘한글 기계화 통일안 왜 못 내나’(1991년 4월 20일), ‘전국이 수입제품 판매장화’(1991년 10월 10일), ‘이동통신, 국제 분쟁 비화조짐-GTE·USTR에 제소 움직임’(1992년 8월 27일) 그리고 ‘정보산업 고급 두뇌 모자란다-학사급 이하는 공급과잉’(1992년 11월 13일) 등을 대표적인 기사로 들 수 있다.

 1990년대 중반 이후에는 빠른 기술개발 및 트렌드를 반영하는 기사가 많았다. ‘통신서비스 새바람 분다-PC대신 TV로, 키보드는 리모컨이’(1995년 8월 2일), ‘인트라넷이 떠오른다’(1996년 2월 1일), ‘멀티 영상시스템 쏟아진다’(1997년 1월 29일), ‘국산 ERP 세 확장 나섰다’(1998년 2월 27일) 등 기사 제목만 봐도 당시 산업 실태 파악이 가능하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유난히 특종이 많았다. ‘이동전화단말기 보조금 폐지’(2000년 5월 23일), ‘북한, 외국에 e메일 개방’(2001년 11월 1일), ‘94년 UR 방송시장 허용 파문’(2003년 3월 13일), ‘위성DMB 로열티 한-일 차별’(2004년 5월 27일), ‘삼성 256메가 P램 세계 첫 개발’(2005년 9월 20일), ‘윈도 비스타 출시 앞두고 전자정부, 인터넷뱅킹 먹통 우려’(2006년 11월 15일) 등 산업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상당한 파장을 몰고 온 기사들이 여럿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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