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보통신이 생업이 된 지 어언 22년이다. 그간 개발실무자, 개발팀장, 기획실장, 벤처 대표를 거쳐오면서 우리나라 IT 인재가 기술적 역량은 아주 우수하나 사회성 측면에 뭔가 부족함을 많이 느끼곤 했다. 이 부분만 잘 개선된다면 크게 될 만한 선후배를 많이 보아온 탓이다.
사회성은 일종의 마음 수련 및 커뮤니케이션 부분으로 개방·참여·공유의 웹2.0 시대에는 더욱 중요하게 될 것 같아 내가 경험한 몇몇 경우를 같이 나눠보고자 한다.
‘손해보고 싶지 않다’는 것은 ‘편해지고 싶다’는 것과 통하는 생각이다. 다시 말하면 지저분한 일은 하고 싶지 않다, 앉고 싶다, 빨리 자고 싶다, 불평은 듣고 싶지 않다는 것일 게다. 누구나 그런 마음을 갖고 있지만 개중에는 자기가 손해를 본다는 것을 알면서도 “잘 알겠습니다”며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다. 그것도,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어쩔 수 없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기꺼워하면서 말이다. 이런 사람은 당장은 손해를 보겠지만 3년 후, 5년 후에는 반드시 이익을 보게 된다. 직위 및 수익 등이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앞서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나에게는 이런 일이 있었다.
모 국내통신회사에 근무할 때였다. 어느덧 연구실 내의 중고참이 됐고 내가 맡은 부분의 파트장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당시 국장이 갑자기 불렀다. 대략 ‘국 아래에 우리 연구실을 기능상 2개로 나누려고 한다. 당신이 새로 만드는 실을 맡는 게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순간 ‘이 큰 조직에서 밀리면 안되는데’ 하는 생각과 함께 ‘기회구나’ 싶었다.
하지만 이내 마음이 편치 않아졌다. 당시 연구실에는 실장 아래 나보다 선배인 사람이 두 명이나 더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장님. 저를 잘 봐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하지만 제 위의 두 선배도 제가 보기에는 일을 잘하는데, 먼저 그 두 사람에게 실장을 맡으라고 한 연후에 혹 거절하면 제가 맡는 게 어떨지요?” 하고 말했다.
“물론, 꼭 실장이 돼야 일을 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 일 추진이 염려된다면 제가 그 차석으로 새로운 실로 가도록 하겠습니다”고 덧붙였다.
국장님은 “허, 참” 하면서, “그럼 알았으니 그리 해 보겠다”고 하셨다.
며칠 뒤, 선배가 실장을 맡게 됐고 나는 그 실의 차석으로 이동해 일하게 됐다.
시간이 한참 지나 새로 실장이 된 선배가 나를 불렀다. 술자리에서 그는 “국장님에게 얼마전에 들었는데 나는 몰랐었다. 참 미안하고 또 고맙다”고 말했다.
이후 그 선배와의 관계는 예전보다 훨씬 서로 신뢰와 의리로 차 있음을 서로 느꼈고 일은 일대로 잘 추진돼 상도 받게 됐다.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지금, 그 선배와 나는 다시 위치가 달라졌지만 서로의 신뢰와 의리를 바탕으로 공동사업을 힘차게 하고 있다. 공동사업이라는 것이 사실 얼마나 힘든 것인가. 서로의 기대, 실망, 업무의 밀고 당김. 하지만 이보다 더 큰 저변에 자리잡고 있는 신뢰와 의리는 무엇보다도 더 큰 힘과 추진력이 되고 있다.
예전에 내가 손해보지 않고 실장직 제안을 받아들였더라면 아마 두 명의 선배를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서 지금의 느낌을 감히 후배들에게 권하고 싶다. 자기 의도나 욕구를 위해 살지 않고, 손해본다는 심정으로 산다면 자기에게 더 큰 이익과 발전이 오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는 사실을 말이다.
자!! 이제부터 내가 손해볼 수 있는 기회를 매일, 매순간 잡아보자. 순간에는 조금 아깝다는 생각이 들겠지만, 내 마음은 큰 부자가 되고 그 큰 그릇에 맞는 큰 것으로 채워지는 놀라운 현상을 같이 실천, 경험해 봤으면 한다.
◆김학훈 날리지큐브 사장 khhkhh@kcub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