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희망의 씨앗을 뿌리자

 경기가 언제쯤 좋아질 것 같습니까. CEO를 만나면 항상 듣는 질문이다. 섣부르게 답변할 처지도 아니지만, 이런 질문을 하는 CEO의 마음이 충분히 헤아려진다. 위기론이 확산할수록 CEO의 질문은 더 많아지고 구체적이 될 것이다.

 최근 위기경영론이 화두다. 한국을 대표하는 삼성을 비롯한 대기업의 대대적인 구조조정 소문은 언제 끝날지 모르고 이어지고 있다. 마른 걸레를 다시 짜자는 내핍경영이 주목받는 요즘,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CEO들이 느끼는 체감온도는 지금의 날씨와는 정반대로 영하권이다. 한국 경제를 이끌어온 반도체와 디스플레이·휴대폰산업이 이제 한계에 부딪혔고 이로 인해 파생된 샌드위치 위기론은 이미 하나의 학설처럼 굳어져 버렸다. 해법은 없고 위기론만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다. IT 성장한계론도 마찬가지다. 증권가의 애널리스트나 경제연구소의 연구원도 한국 경제의 위기의 이유로 IT의 부진을 서슴없이 꼽는다.

 위기론은 기업의 투자를 막고 허리띠를 졸라매게 하고 있다. 500조원이라는 부동자금이 투자할 데를 찾지 못하고 부동산에서 주식으로 정처없이 떠돌고 있다. 특히 대기업들의 현금 유보율은 7배가 넘었다. 부동자금과 마찬가지로 기업 또한 투자여건을 탓하며 설비투자에 소극적인 데 따른 탓이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위기상황에 대비한 경영은 당연하다. 하지만 지금 얼마만큼 경영이 심각한 상황인가라고 반문하면 답은 신통치 않다. 수치상으로만 본다면 오히려 우리 경제의 체질은 갈수록 좋아지고 있다. 수출은 17개월 연속 두 자릿수 증가율을 이어가고 있다. 주가는 1900선을 넘어 전인미답의 2000 고지에 바싹 다가섰다. 정부도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4.5%에서 4.6%로 상향 조정했으며, 특히 하반기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애초 4.7%에서 4.9%로 상향 조정했다. 위기의 주범으로 지목된 IT를 들여다보자. 올 상반기 IT수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7.8% 증가한 573억2000만달러에 달했다. 수입은 6.7% 증가한 306억달러를 기록, IT수지가 267억2000만달러로 사상 최대 흑자를 나타냈다. 상반기뿐만 아니다. 한국은행은 12일 콜금리 발표 직후 국내 경제가 수출 호조와 내수 회복에 힘입어 상승세를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코스피 상장 제조업체 463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경제상황에 대한 기업인식 조사에 따르면, 응답기업의 55.7%가 경기가 회복되고 있거나 호황국면이라고 답했다. 한국 경제 아니 IT산업이 왜 위기인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은 대목이다.

 실제 위기상황이라고 하더라도 위기를 부추기기보다는 서로 격려하고 북돋우면서 위기를 극복하려는 게 인지상정이다. 위기상황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스스로 위기상황이라고 생각하면 위기를 불러오게 된다. 지금 우리는 스스로 위기라고 자꾸만 최면을 걸고 있는 듯하다. 평상시처럼 투자와 생산·소비가 정상적으로 이루어지는 선순환구조가 이어져야 한다는 목소리는 여기저기서 외쳐대는 위기론의 고함소리에 묻혀버리고 있다.

 아프리카에 두 개의 마을이 있다. 그중 한 마을에는 씨앗이 있어 씨를 뿌렸지만, 다른 마을은 씨앗이 없었다. 그러나 사상 최악의 가뭄으로 씨앗은 싹도 틔우지 못하고 말라죽었다. 상황은 마찬가지가 된 셈이다. 하지만, 그 다음해 씨앗을 심은 마을은 죽은 사람이 거의 없었지만, 씨를 뿌리지 못한 마을은 절반 이상이 굶어죽었다는 것이다. 오지탐험가에서 이제는 민간단체에서 난민구호팀장을 맡고 있는 한비야씨는 씨앗에 싹이 터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희망이 그 무섭고 힘든 가뭄을 무난히 극복하게 한 것 같다고 경험담을 이야기한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위기론에 포로가 돼 투자를 축소하고 허리띠만 졸라맨다면 우리에게는 희망이 없다. 위기경영·내핍경영은 전략이 아니다. 정확한 미래에 대한 예측과 R&D, 적절한 포트폴리오와 이를 위한 투자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위기론에 함몰돼 씨앗을 뿌리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양승욱부국장@전자신문, swy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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