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러기, 소나무, 도라지, 개미, 제비, 나리, 너구리, 장미….’
이 단어들의 공통점은 모두 아름다운 우리말이지만 ‘험악한’ 태풍 이름이라는 것이다.
원래 태풍 이름은 미 합동태풍경보센터(JTWC)가 여성 이름으로 짓다가 지난 98년 태풍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2000년부터 아시아권 14개국이 제출한 140개의 이름이 사용되고 있다.
차 이름도 알고 보면 의미가 있다. 옛날 대우의 프린스는 ‘왕자’고 라노스는 ‘쪽빛의 푸른 용(람용)’, 누비라는 ‘여행가’다. 또 현대 베르나는 이탈리아 말로 ‘열정’, 아반떼는 스페인어로 ‘전진’, EF 소나타는 피아노 독주곡을 의미한다. 에쿠스는 라틴어로 ‘개선장군의 말’이다. 또 우리가 많이 알고 있는 ‘봉고’는 ‘아프리카 산양’, ‘복사’는 영어로 ‘권투선수’다. 수출차의 이름은 또 현지 사정에 따라 비어나 은어로 쓰여 바뀌기도 한다.
정부 출연연의 경우는 기업처럼 다양하게 작명하진 않는다. 그러나 이름 속에 미래가 담긴 선견지명을 가진 기관명도 있다. 바로 ETRI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이란 한국명이야 정부방침이니 어쩔 수 없지만, 영어명에는 모든 출연연 이름에 들어있는 코리아라는 ‘K’ 스펠링이 없다. 글로벌을 지향한다는 의미다. 당시 경상현 전 정통부장관이 작명했다고 전해진다.
대학 이름으로는 대덕의 ICU에 ‘K’ 자가 없다. 이 ICU라는 이름을 두고 일부에서는 영어 스펠링을 읽듯 ‘아이씨유’라고 읽지 않고 ‘이쿠’라고 읽기도 한다. ‘아이씨유’는 어색하지만 직역하면 ‘나는 너를 본다’는 긍정적인 말이고, ‘이쿠’(!)는 굳이 해석하면 아쉬운 감정상태를 나타내는 사투리쯤 된다.
요즘 정보통신대(ICU)가 KAIST와의 통합 여부를 결정할 이사회를 앞두고 시끄럽다. KAIST에 흡수되냐 독자 노선을 걷느냐가 관건이다. 당혹스러운 일이 일어나 모두에 충격을 주기보다는 예측 가능한 일이 일어나는 사회가 바람직한 모습인 줄은 모두 안다. ICU를 다시 볼 수 있을지, ‘이쿠’로 역사가 끝나 KAIST란 이름으로 불릴지는 29일 이사회가 끝나기 전까지는 예측불가다.
박희범 전국취재팀장 hbpark@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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