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 통합기구(방송통신위원회) 설치 논의가 결국 해를 넘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아직 절반도 지나지 않았는데 무슨 악담이냐 하겠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연내에 통합기구설치 논의를 매듭짓기로 하고 출범한 국회 방송통신특별위원회의 활동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흐르는 것만 봐도 그렇다. 방통융합 논의 자체를 차기 정부로 넘기자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것도 어제 오늘 일만은 아닌 듯하다.
급기야 엊그제 제7차 특위에서는 통합기구설치법 논의보다는 IPTV도입 문제를 먼저 처리하자는 의견이 봇물을 이뤘다. 선 IPTV도입논의 주장은 지름길을 두고 애써 돌아가며 국력을 낭비할 필요는 없다는, 일견 타당한 지적으로 들릴 수 있다. 있지도 않은 통합기구를 만드는 것보다 그 시간에 IPTV 논의에 바로 나서는 게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이날 한 의원은 “통합기구가 만들어지면 해야 할 일이 IPTV 논의뿐일 텐데, 그렇다면 곧바로 IPTV 논의에 들어가자”며 이런 논의에 불을 질렀다고 한다.
문제는 이런 주장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느냐는 점이다. 그렇지 않아도 통신계와 방송계는 이 문제를 두고 지난 10여년 동안 거의 매일 사생결단으로 싸워왔다. 이런 상황은 현재 발의 중인 IPTV도입관련 법안만 7∼8개나 되는 것만 봐도 능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 같이 부처별·정파별·의원별로 첨예하게 이해가 엇갈린 것들인데 이것들을 어떻게 하나로 조율해낼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반면 통합기구설치법안은 통신과 방송 간 입장차가 있긴 하지만 유관 부처들이 그 내용에 원칙적으로 합의했던 사안이라는 점에 의미가 컸다. 방통융합이라는 큰틀에서 볼때 구름잡기만 같았던 논의의 순서와 방향을 잡고 세부 조율만 남겨 놓았다는 얘기이다.
통합기구설치법안을 만든 것은 IPTV 도입문제를 중립적인 입장에서 접근해보자는 취지였다.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통신과 방송을 아우르는 중립기구를 통해 해결하는 게 결과적으로 더 빠르고 효율적이라 판단한 것이다. 국회 역시 이런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들여 여야합의를 통해 방통특위를 구성했다.
이런 출범 배경을 가진 방통특위가 어느날 갑자기 IPTV도입 문제를 다시 원점으로 되돌려 버린 것이다. 예정대로라면 통방특위는 통합기구설치법안을 6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고 하반기부터는 이 법을 전제로 IPTV도입 논의를 진행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현재까지 특위가 한 일은 설치법안 공청회 한 번과 이 법안을 특위 법안심사소위에 회부하기로 한 결정이 거의 전부이다.
이런 속도라면 대선이 치러지는 연내에 법안 처리는 물 건너간 일이다. 그런 분위기에서는 IPTV 도입논의 역시 제대로 된 판 한 번 못 벌일 게 뻔하다. 특위 위원들이 이런 전후사정을 모르는 게 아니라면, 선 IPTV도입 논의 주장은 통방융합 논의 전반을 차기 정부에 넘기자는 뜻이 된다.
10여년을 노심초사한 정부로서는 이제 ‘닭 쫓던 개 지붕쳐다 볼’ 일만 남게 됐다. 방통융합 정책 전반을 담당하는 국가 기구를 출범시키려던 정부의 원대한 계획도 차질이 불가피해질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지금 부랴부랴 결정하는 것보다 차기정부에서 차근차근 정리하는 게 순리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지만 이제와서 순리를 따질 때는 아니다. 또 차근차근 정리하는 일도 그때 가봐야 알 일이다. 서비스 일정상 하루가 급한 업계로서는 분통 터질 일이다.
방통융합 논의가 단순한 산업논리에 의해 빠지는 것은 문제다. 그러나 지나치게 정치논리에 치우쳐 휘둘리는 것은 더 큰 문제다. 분명한 것은 지금 방통융합 논의 자체가 정치과잉 상태라는 사실이다. jsuh@etnews.co.kr
서현진부국장@전자신문, jsu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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